138억 년 전에는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을까?

by 늘람

나는 종종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빛이 내 눈에 닿는다. 그 빛은 지금 이 순간의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별이 아직 살아 있었을 때 방출된 빛이 우주를 건너온 것이다. 빛은 유한한 속도로 이동하기에, 우리는 언제나 지금이 아닌 과거를 본다. 이 검증된 사실은, 나의 시간 감각을 흔든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현재가 아닌,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빛을 보며 현재를 느낀다.


그리고, 그렇다면이라며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을까?


◆ 과학이 그려주는 경계선

과학은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표준 우주론에 따르면, 빅뱅은 약 138억 년 전 공간과 시간이 동시에 시작된 지점이다. 따라서 "이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앨런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은 빅뱅 직후 우주가 급격히 팽창했다고 설명하며,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리 우주가 끝없이 확장하는 다중우주의 한 부분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리 스몰린 같은 물리학자는 블랙홀을 통해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는 진화하는 우주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플랑크 시간(10⁻⁴³초) 이전의 상황은 우리가 아는 물리 법칙으로는 기술할 수 없다. 이 극한적 조건에서는 공간과 시간 자체가 양자적 요동을 겪으며, 연속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루프 양자중력 이론에서는 빅뱅이 이전 우주의 빅 크런치 이후에 일어난 빅 바운스일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런데 나는 문득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본다. 스티븐 호킹이 말했듯이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묻는 것은 남극의 남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면 우리가 질문 자체를 잘못 설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카오스라는 새로운 렌즈

혹시 빅뱅 이전은 무(無)가 아니라 카오스가 아니었을까?

여기서 카오스는 단순한 무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 카오스는 질서(코스모스) 이전의 원시적 상태였지만, 완전히 비어있는 무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잉태한 원시적 충만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상상해 본다면, 빅뱅 이전의 카오스는 모든 가능성의 존재 상태였을 수도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간단한 비유를 들어보자. 당신이 거대한 도서관에 들어갔다고 상상해 보라. 하지만 이 도서관의 모든 책들이 아직 쓰이지 않은 채로 있다. 빈 페이지들만 가득하다. 그런데 그 빈 페이지들 속에는 인류가 쓸 수 있는 모든 이야기가 잠재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천재가 쓸 미래의 걸작도, 모든 가능한 소설과 시가 그 빈 페이지들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빅뱅 이전의 카오스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무한한 우주들의 가능성이 동시에 중첩되어 있는 상태 말이다. 물론 이는 현재로서는 검증 불가능한 철학적 사유실험일 뿐이다.


◇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단서

양자역학의 중첩 원리를 떠올려보자. 관측 이전의 입자는 모든 가능한 상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처럼, 상자 속의 고양이는 관측하기 전까지 죽음과 삶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다.


동전을 던져서 손으로 감싸 쥐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동전을 보기 전까지, 그것은 앞면도 뒷면도 아닌, '앞면+뒷면'의 상태로 존재한다. 양자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상상해 본다면, 빅뱅 이전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모든 우주의 가능성이 동시에 중첩된 거대한 양자 상태로 존재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아는 물리 법칙들, 우리가 경험하는 시공간의 구조, 심지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우주들까지도 모두 하나의 거대한 '상자' 속에서 중첩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 복잡계 과학과 창발의 마법

복잡계 과학에서 말하는 "카오스의 가장자리"(edge of chaos) 개념도 흥미롭다.

생각해 보자. 물은 H₂O라는 간단한 분자지만, 수많은 물분자들이 모이면 파도, 소용돌이, 구름 같은 복잡한 패턴을 만든다. 새 떼를 보자. 각각의 새는 단순한 규칙(앞의 새를 따라가라, 너무 가까이 가지 마라, 무리에서 떨어지지 마라)만 따르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부분의 단순한 합 이상의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 현상을 창발(Emergence)이라고 한다. 1+1=2가 아니라 1+1=새로운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무질서와 질서 사이의 경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현상들이 일어난다. 새로운 패턴이 창발하는 것이다.

만약 빅뱅이 바로 그런 임계점에서 일어난 거대한 창발 현상이었다면?


현대의 카오스 이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겉으로는 완전히 무작위로 보이는 현상도 사실은 결정론적 법칙을 따르고 있다. 날씨를 예측하는 로렌츠 방정식의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처럼, 복잡한 카오스 속에도 숨겨진 질서가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도 이런 맥락이다.


단지 그 패턴이 너무 복잡하고 초기조건에 극도로 민감해서 예측할 수 없을 뿐이다. 마치 거대한 만다라 같은 그림이 너무 가까이서 보면 무의미한 점들로만 보이는 것처럼.


◆ 철학이 열어주는 지평

◇ 하이데거의 시간성과 존재

하이데거는 "존재는 언제나 이미 이해된 상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그의 『존재와 시간』에서 볼 때, 우리가 빅뱅 이전을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라는 개념이 시간성(Zeitlichkeit)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시간은 단순한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경험하며, 미래를 기대하는 존재다. 이 세 차원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진정한 시간성이다.


하지만 만약 빅뱅 이전의 카오스가 시간성 이전의 존재 양식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 개념 자체를 확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치 3차원에 갇힌 존재가 4차원을 상상하려 하는 것처럼.


◇ 칸트의 인식론적 한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시간과 공간이 사물 자체(Ding an sich)의 성질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을 구성하기 위해 부여하는 순수 직관의 형식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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