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연과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by 늘람

I. 도입 ― 언어와 삶의 좌표

사람은 왜 언어를 배우는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한국어를 익혀야 하고, 지구촌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영어를 배우며, 우주를 이해하려는 자는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존재의 조건을 갖추는 일이다. 언어는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좌표이며, 사회와 우주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나침반이다.


자연과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물리적 법칙과 생명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공통 언어를 익힌다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왔지만, 동시에 자연과학을 통해 협력하고 공존하려는 시도 또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오늘날 세계는 국수주의적 회귀와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다. 바로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자연과학을 통해 세계를 잇고, 평화의 토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현실적 필요다.


II. 세계의 단층 ― 세계화의 후퇴와 국수주의의 귀환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세계화가 인류의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 믿었다. 상품과 자본, 사람과 지식이 국경을 넘나드는 흐름은 멈출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이 흐름에 균열을 냈다.


수치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IMF 자료에 따르면, 1990~2007년 사이 세계 무역은 연평균 6% 이상 성장했으나, 2008년 이후로는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 보고서는 참가 기업의 79%가 공급망 리스크를 이유로 지역화·내재화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화의 종언"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무역 패턴에서도 드러난다. 1995년 세계 GDP 대비 무역 비율은 23%에서 2008년 31%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정체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역주행했다. 브렉시트는 유럽 통합의 상징이 무너지는 사건이었으며,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반도체·AI·에너지 등 핵심 기술 분야를 철저히 블록화 시켰다.


흥미롭게도, 과거의 세계화는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동시에 상호의존적 평화를 가능케 했다. 20세기 후반 자유무역 질서는 전쟁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 균열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의 갈등으로 번져나간다.


III. 갈등의 얼굴 ― 전쟁·빈곤·정보 분열

분열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하다. 오늘날 전 세계 난민과 실향민은 1억 1,400만 명을 넘어섰다(UNHCR, 2024). 이는 1990년대 초반 2,000만 명 수준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시리아 내전 하나만으로 1,300만 명이 터전을 잃었고, 아프가니스탄은 40년째 난민을 생산하고 있다. 전쟁은 국경을 넘어선 파괴를 낳고, 주변국과 세계 전체의 불안정을 키운다.


갈등은 단순히 정치·군사적 요인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새로운 갈등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다르푸르 분쟁은 종종 "세계 최초의 기후 전쟁"으로 불린다. 사막화와 물 부족이 부족 간 갈등을 격화시켰고,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IPCC는 기후위기로 인해 2050년까지 최대 2억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21세기의 갈등이 무기와 군대만으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의 흐름 자체가 전쟁터가 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SNS 여론 조작은 디지털 국경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시기 가짜뉴스는 방역을 방해하고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인류가 공통의 위기를 직면했을 때조차, 진실은 협력보다 분열의 도구로 쓰였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인류가 하나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는가?


IV. 자연과학의 보편성 ― 증거와 합의의 문법

정치·종교·이념은 수천 갈래로 나뉠 수 있지만, 자연과학은 하나의 문법 위에서 작동한다. 증거와 합의라는 보편적 절차 덕분이다. 과학은 어느 한 나라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스위스 특허국의 작은 책상에서 시작했지만, 곧 전 세계 실험실에서 검증되며 인류의 공동 지식으로 자리 잡았다.


국제공동연구의 증가 추세가 이를 보여준다. 1990년대 초반 국제 공동저자 논문 비율은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25%를 넘어섰다. 세계 상위 과학저널에 실린 논문 중 절반 가까이가 2개국 이상 연구자의 협력 결과다. 노벨상 수상 연구 또한 2000년 이후 70% 이상이 다국적 협력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 보편성은 과학의 철학적 토대와 맞닿아 있다. 칼 포퍼가 말한 반증 가능성, 토머스 쿤이 지적한 패러다임 전환은 모두 과학이 폐쇄적 교리로 고정되지 않고, 합리적 비판과 검증을 통해 발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치적 이념은 반대파를 배제하지만, 과학적 이견은 새로운 실험을 통해 결국 합의의 장으로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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