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음의 압력 – 조심스러운 인간의 물리학

by 늘람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라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1억 분의 1도 아니고, 1천만 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을 나는 길게도, 때로는 너무 짧게도 느끼며 살아간다. 하루는 때로 버겁게 길지만, 한 해는 믿기 힘들 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이 모순된 감각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세상 속 시간을 견뎌낸다.


우주 속 내 삶의 덧없는의 비율 앞에서 나는 종종 겸손해진다. 모든 것이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먼지와 같다고, 잠시 빛나는 파동일 뿐이라고 다독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나를 가볍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무겁게 누른다. 우주가 이렇게 거대한데, 왜 나는 이렇게까지 버겁게 살아야 하는지. 이토록 짧은 삶이 왜 이리도 무겁게 느껴지는지.


현실의 나는 여전히 카드값과 대출 원리금을 걱정하며 산다. 은행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기도 하고, 사소한 실수에도 며칠씩 마음을 졸인다. 그렇게 사소한 일련의 파동들이 쌓여 갈 때, 나는 빛의 속도를 이해하는 머리와, 이율을 계산하는 손끝이 한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겸손을 말하면서도 신용점수 앞에서는 불안해지고, 덧없음을 생각하면서도 계좌 잔액을 확인한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풍경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중력장 속 한 줌의 질량으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삶의 무게로 번역되는 일이다.


나는 늘 세상을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말을 아끼고, 실수를 두려워하고, 상대의 눈치를 먼저 본다. 타인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시작한 습관이 어느새 나를 가두는 벽이 된다. 언젠가 동료가 “오늘 힘들어 보여요”라고 물을 때, 괜찮다고 답했지만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나도 모를 때가 많다.


가끔은 감정을 조절하다가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산다. 사고 나서 후회하고, 또다시 절제한다. 카페에 앉아 괜히 식은 커피를 오래 바라본다. 그렇게 반복되는 작은 파동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온도를 확인한다. 그 과정이 내 안의 압력이 새어 나오는 틈이다. 조심스럽게 쌓아온 겸손이 임계점을 넘으면, 에너지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폭발한다. 그것은 화가 아닌, 오래 눌러둔 생의 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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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늘 머무르며 흐르는 글로 만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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