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식의 정렬 (The Alignment of Mind)

by 늘람

힘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힘의 역사였다.


사람은 언제나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찾아내고, 그것을 길들이며 살아왔다.

돌을 던지던 손은 활을 만들었고, 활을 쏘던 팔은 바람을 이용해 돛을 세웠다.

물의 힘은 수차로 변했고, 불의 열은 철을 녹여 도시를 세웠다.


처음엔 단순했다.

돌을 들어 올리는 힘, 물을 긷는 힘, 불을 지피는 힘.

그 힘은 인간의 몸에서 나왔고, 그 한계는 명확했다.

인간은 하루에 일정 시간만 일할 수 있었고, 일정 무게만 들 수 있었다.

그 한계가 곧 문명의 속력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몸 밖에서 힘을 찾기 시작했다.

바람의 방향을 읽어 돛을 세우고, 물의 낙차를 이용해 맷돌을 돌렸다.

말과 소를 길들여 밭을 갈았고, 화약의 폭발력으로 바위를 깼다.

자연의 법칙은 더 이상 단순한 신의 섭리가 아닌,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힘의 체계로 바뀌어갔다.


그때부터 인간은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세상은 신비가 아닌 법칙이었고, 인간은 법칙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법칙을 인간이 이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잡았다.

그 믿음이 과학이 되었고, 과학은 문명을 가속시켰다.


고대의 제국은 무력으로,

중세의 왕국은 신의 이름으로,

근대의 국가는 기술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했다.

활 대신 대포가, 손 대신 기계가, 말 대신 인쇄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인간은 그 모든 변화를 문명의 진보라 불렀다.


하지만, 역사의 깊은 곳에서는 늘 한 가지 물음이 따라왔다.


"인간이 믿는 힘들이 향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답은 언제나 유예되었다.

힘을 얻는 것만으로도 바빴고,

그 힘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방향은 나중의 문제였다.

아니, 방향에 대한 의문은 애초에 없었다.

힘의 크기 자체가 곧 방향이라 믿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많이---그것이 유일한 좌표였다.


증기의 진동 --- 산업화의 시작


1769년, 스코틀랜드의 한 공방에서 제임스 와트는 뜨거운 증기가 피스톤을 밀어내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기계공이 아니었다. 그는 열이 어떻게 운동으로 바뀌는지를 이해하려는 사람이었다.


와트가 증기기관의 밸브를 개선했을 때, 사람들은 그 발명을 단순한 공학적 사건으로 여겼다.

조금 더 효율적인 펌프, 조금 더 강한 동력. 그 정도의 의미였다.

그렇지만, 그 작은 금속 장치는 세계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었다.


마차가 달리던 길에 철도가 깔렸다.

처음에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초기 철도 시대,

일부 의사와 언론은 시속 30킬로미터의 속력은

인체에 위험하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지금 보면 우스운 기준이지만, 당시엔 진지한 공포였다.

하지만 기차는 멈추지 않았다.

철로는 대륙을 가로질렀고,

사람과 물자는 한 달 걸리던 거리를 하루 만에 이동했다.


사람의 손으로 짜던 천이 기계의 바퀴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짜던 천을, 기계는 한 시간 만에 만들어냈다.

도시는 굴뚝으로 가득 찼고, 하늘은 석탄의 연기로 가득찼다.

공장의 소음은 새로운 음악처럼 들렸다.

기계가 내뿜는 증기의 리듬은 문명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소리는 동시에 인간이 기계에게 밀려나는 소리이기도 했다.


공장 안의 노동자들은 그 기계를 저주했다.

직조공으로 평생을 살아온 이들에게, 기계는 생계를 빼앗는 괴물이었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바퀴는 쉼의 개념을 없애버렸다.

기계는 피곤해하지 않았고, 배고파하지 않았으며, 잠들지도 않았다.

하루의 리듬은 인간의 몸이 아닌 기계의 속력에 맞춰 조정되어가고 있었다.


1811년, 영국의 노팅엄.

한 무리의 직조공들이 어둠 속에서 망치를 들었다.

그들은 공장으로 쳐들어가 기계를 부쉈다.

톱니바퀴가 부서지고, 실타래가 흩어지고, 증기 엔진의 배관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네드 러드의 추종자'라 불렀고,

역사는 그들을 '러다이트(Luddites)'라는 이름으로 기록했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들을 기술을 두려워한 어리석은 이들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불빛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기술에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최초의 집단적 불안이었다.

그것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다른 형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기기관은 멈추지 않았다.

기계는 더 정교해졌고, 노동은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었다.

낫과 망치 대신 스패너와 설계도가 인간의 손에 들려 있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불안은 점차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변해갔다.


인간은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웠고, 기계는 인간의 삶을 다시 짜맞추었다.

문명은 더 큰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 힘이 향하는 방향은 점점 더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이 가져온 것은 단지 속력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던 시간의 재구성이었다.

그리고 그 재구성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자신의 리듬을 잃기 시작했다.


전기의 시대 --- 밤의 소멸


1879년 10월 21일.

토머스 에디슨의 실험실에서 탄소 필라멘트 전구가 하룻밤을 넘어 빛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그 빛을 보기 위해 줄을 섰고, 신문은 "밤을 정복한 발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세계는 새로운 빛을 얻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해가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촛불이나 등유 램프와 달리, 전기는 깨끗했고, 안전했으며, 무엇보다 밝았다.

스위치 하나로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서 완전히 독립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밤은 낮으로 바뀌었고, 시간의 질서는 깨졌다.

공장은 24시간 불을 켤 수 있게 되었고, 도시는 잠들지 않았다.

"밤에도 일할 수 있다"는 문장은 그 시대의 진보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생산성은 두 배, 세 배로 늘었다.


밤의 시간이 낮의 시간으로 전환되었고,

인간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48시간으로 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밝음 속에서 인간은 밤의 의미를 잃었다.


어둠은 단지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둠은 몸과 마음이 스스로의 리듬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낮에 쓴 에너지를 밤에 회복하고, 외부로 향했던 의식을 내부로 돌리는 시간.

꿈을 꾸고, 기억을 정리하며, 존재의 깊은 곳과 만나는 시간.


그 리듬이 사라지자 인간은 더 오래 일했고, 피로는 문명의 그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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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를 씁니다. 늘 머무르며 흐르는 글로 만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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