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두려움의 가속도

Acceleration of Fear

by 늘람

⚠️ 이 글의 성격에 대한 안내 이 시리즈는 정답을 선언하는 글이 아닌, 변화하는 세계와 함께 조금씩 다듬어가는 사유의 기록입니다. 데이터와 연구가 축적되거나, 이후 편에서 더 깊은 맥락이 드러나면 일부 내용은 수정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류가 아닌, 더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글을 ‘완성본’이 아닌 ‘진행 중인 사유’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지의 끝

2022년 11월 30일, OpenAI는 ChatGPT를 공개했다.

처음엔 조용했다.

몇몇 기술 커뮤니티에 링크가 돌았고, 관심 있는 이들만 접속했다.

무료였고, 승인 절차도 없었다.

이메일만 입력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초기 사용자들의 반응은 신중했다.

‘신기하다. ‘생각보다 괜찮다’ ‘틀린 게 많다.’

감탄보다는 관찰이었고, 놀라움보다는 평가였다.


AI와 대화한다는 사실은 새로웠지만, 그 대화의 질은 부족했다.

대부분의 질문에 답을 했지만, 종종 없는 사실을 지어냈다.

문장은 자연스러웠지만, 맥락을 잃기도 했다.

영어는 유창했지만, 한국어는 어색했다.

코딩을 했지만, 자주 할루시네이션이 있었고, 코드에는 버그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AI의 한계를 발견하며 안심했다.

‘기계는 기계다.’ ‘아직 멀었다.’고 말했고, 그 안심은 일종의 평형이었다.

기술은 진화했지만, 인간의 영역은 여전히 안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통계의 숫자는 달랐다.

공개 5일 만에 백만 명이 접속했다.

역사상 가장 빠른 확산이었다.

인스타그램은 사용자의 수가 100만명에 도달하는 데 2.5개월이 걸렸고, 넷플릭스는 3.5년이 걸렸다. ChatGPT는 5일이었다.


2개월 후인 2023년 1월, 사용자는 1억을 넘어섰다.

9,900%의 성장이었고,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소비자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이 확산 속력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었다.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고, 심리적 평형이 깨졌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사회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양가감정의 데이터

2023년 2월, 미국에서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첫 전국 조사가 실시되었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51%의 교사가 이미 ChatGPT를 사용하고 있었다.

공개된 지 두 달 만이었다.

학생은 22%만이 주간 사용자였다.

시작은 교사가 학생보다 앞서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사용 이유였다.

교사들은 수업 계획, 창의적 아이디어 생성, 배경지식 구축에 ChatGPT를 활용했다.

부정행위 적발보다 교육 도구로서의 활용이 4배 더 많았다.

그들은 AI를 위협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도 확산되고 있었다.

2023년 10월, 미국 사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Ernst & Young의 조사는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

71%의 직원이 AI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고, 48%는 1년 전보다 더 불안해졌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수치는 더 명확했다.

75%가 "AI가 특정 직업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고,

65%는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같은 해, 다른 조사는 또 다른 면을 드러냈다.

직장에서 AI를 사용하는 근로자 중 90%가 "AI가 시간을 절약해준다"고 답했다.

생산성이 올랐고, 업무가 수월해졌으며, 효율이 향상되었다.


끌림과 밀림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었다.

시간을 절약하는 90%와 일자리를 걱정하는 65%.

두 숫자는 상반되지만, 같은 집단에서 나왔다.

같은 사람들이 AI를 사용하며 효율을 경험하는 동시에,

AI 때문에 밀려날까 두려워했다.


OECD의 조사는 이를 더 명확히 보여주었다.

AI 도입이 근로자의 60%에게 "일에 대한 즐거움을 증가"시켰다.

동시에 60%가 "10년 내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했다.


같은 비율. 같은 집단. 다른 감정.

이 변화는 시간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공존하는 두 개의 힘이었다.


2023년 3월 14일, OpenAI는 GPT-4를 공개했다.

차이는 극명했다.

GPT-4는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10%에 들었다.

GPT-3.5는 하위 10%였다.

4개월 만에, AI는 시험의 양 끝을 오갔다.


SAT 점수는 더 인상적이었다.

GPT-3.5는 1260점, GPT-4는 1410점이었다.

그런데 진짜 충격은 과목별 편차였다.

수학은 700점으로 동일했지만, 언어는 670점에서 710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AI는 수학이 아닌 언어에서 진화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역설이었다.

컴퓨터는 원래 계산기였다.

수학적 연산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AI는 계산이 아닌 이해에서 인간을 따라잡았다.


기업들은 즉각 반응했다.

벤치마크가 공개된 지 두 달 만에, IBM은 백오피스 직원 7,800명의 채용 중단을 발표했다.

숫자 또한 구체적이었다.

‘5년 내 30% 대체.’

BT Group은 2030년까지 42%를 AI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전체 직원의 거의 절반인 42,000명이었다.


두려움은 이제 추상이 아닌 실직적인 숫자가 되었다.

변화의 속력이 다시 빨라졌다.


2023년 7월, 교사 사용률은 63%로 증가했다.

5개월 만에 51%에서 12% 포인트 상승했다.

학생은 42%로 뛰었다.

22%에서 20% 포인트 상승했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변화 속도가 교사의 거의 2배였다는 사실이었다.


2024년이 되었을 때, ChatGPT는 2억 명 이상의 활성 사용자를 기록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AI를 써볼까?’’라고 묻지 않았다.

‘어떤 AI를 써야 할까"를 생각했다.


일상에 녹아들었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용과 불안은 함께 증가했다.

익숙해질수록, 대체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명확히 보였다.


1811년, 집단의 선택

1811년 11월 11일 밤, 노팅엄.

어둠 속에서 두건을 쓴 남자들이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망치와 도끼가 들려 있었다.

목적지는 명확했다.

윌리엄 카트라이트가 운영하는 직조 공장.

그곳에 새로 들어온 광폭 직기(wide frames)를 부수기 위해서였다.

자정이 지나 그들은 공장 문을 부쉈다.

경비원이 총을 쏘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남자들은 공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쇠망치가 직기의 나무 프레임을 내리쳤고,

도끼가 톱니바퀴를 쪼갰다.

실이 끊어지고, 금속이 일그러지고, 나무가 부서졌다.

한 시간 만에 17대의 직기가 파괴되었다.


역사는 그들을 "러다이트(Luddites)"라 불렀다.

기술을 두려워한 미개한 자들. 진보를 거부한 어리석은 자들.

그러나 정말 그들은 기술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그들은 30년 넘게 직조공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손에 실이 감기는 감각을 알았고, 베틀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몸으로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배우고 아들에게 가르치는 기술.

천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정체성이었다.


기계는 그 정체성을 흔들었다.

문제는 기계가 빠르다는 것이 아니었다.

기계가 그들이 평생 쌓아온 숙련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광폭 직기는 3개월 훈련받은 소년이 다뤘다.

30년의 감각, 눈의 판단,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이 모든 것이 기계 앞에서는 쓸모없어 보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방향의 상실이었다.

‘직조공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천을 짜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었다.

기술을 익히고, 품질을 높이고, 명성을 쌓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것.

그 방향이 명확했다.


그런데 기계가 등장하자 그 방향이 사라졌다.

이제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평생 쌓아온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그들은 선택하려 했다.

‘기계 없이 살겠다. 손으로 짜는 방식을 유지하겠다.’

하지만 그 선택은 허용되지 않았다.


공장주들은 기계를 계속 들여왔다.

인근 공장들이 이미 기계를 도입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의 생산 단가가 내려갔다.

가격 경쟁에서 밀릴 것이다. 주문이 줄고, 수익이 떨어지고, 결국 공장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공장주에게 기계는 선택이 아닌 생존이었다.


1811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노팅엄과 요크셔 지역에서 수백 대의 기계가 부서졌다.

두건을 쓴 남자들이 어둠 속에서 공장에 침입했다.

망치가 나무 프레임을 내리쳤고, 도끼가 톱니바퀴를 쪼갰다.

실이 끊어지고, 금속이 일그러지고, 기계가 멈췄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새 기계가 주문되었다.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멈출 수 없었다.

경쟁 공장들은 매일 생산하고 있었다.


1년 후, 의회는 '기계 파괴법(Frame Breaking Act)'을 통과시켰다.

기계를 부수는 행위는 사형에 처해졌다.

몇몇은 교수대에 올랐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역사는 이것을 '적응의 실패'라고 기록했다.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집단의 몰락이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평가일까?

그들이 실패한 것은 적응 능력이 아니었다.

그들이 잃은 것은 선택할 권리였다.

사회는 단일 방향만 허용했다.

‘기계와 함께 가라.’ 다른 선택은 범죄가 되었다.

기계 없는 삶을 선택할 권리, 손으로 짜는 방식을 유지할 권리,

느린 생산을 선택할 권리. 그 모든 것이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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