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성격에 대한 안내 이 시리즈는 정답을 선언하는 글이 아닌, 변화하는 세계와 함께 조금씩 다듬어가는 사유의 기록입니다. 데이터와 연구가 축적되거나, 이후 편에서 더 깊은 맥락이 드러나면 일부 내용은 수정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류가 아닌, 더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글을 ‘완성본’이 아닌 ‘진행 중인 사유’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2년 11월 30일, OpenAI는 ChatGPT를 공개했다.
5일 만에 백만 명이 접속했고, 2개월 후 1억 명을 넘어섰다.
2024년 McKinsey 조사에 따르면 78%의 조직이 AI를 도입했다.
그런데 같은 조사는 다른 숫자를 보여준다.
AI 파일럿 프로젝트 중 단 26%만이 실제 비즈니스 가치로 전환되었다.
78%가 시작했지만, 4분의 3은 멈춰 있다.
IBM 연구진의 표현을 빌리면 "샌드박스에 갇혀" 있다.
시작했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저항이거나,
익숙함에 대한 집착이라거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바닥에 놓은 물건을 밀때, 처음엔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더 세게 밀어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상자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저항 때문일까?
아니다.
상자는 단지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정지해 있었다면 정지하려 하고,
움직이고 있었다면 같은 방향과 빠르기로 계속 움직이려 한다.
관성이다.
관성은 저항이 아니다.
관성은 정체성이다.
1811년 직조공들.
그들이 기계를 부순 것은 기계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잃는 것은 일자리가 아닌 방향이었다.
'더 나은 직조공이 된다'는 방향.
'명품을 만든다'는 방향.
'기술을 전수한다'는 방향.
30여년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온 사람에게, 그의 삶의 방향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방식이다.
'나는 직조공이다'라는 문장 속에는 30여년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손끝의 감각, 눈의 판단, 실과 베틀의 관계.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을 만들었다.
관성은 질량과 속도의 곱이다.
운동량.
무거운 물체가 빠르게 움직이면 관성이 크고, 가벼운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면 관성이 작다.
하지만 여기서 질량은 단순한 무게가 아니다.
질량은 축적이다.
30년 경력의 직조공.
15년 경력의 교사.
20년 역사의 조직.
그들의 질량에는 시간이 누적되어 있다.
매일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같은 리듬으로 사유하고,
같은 정체성을 확인하는 반복된 과정이 질량을 만든다.
그렇게 누적된 질량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질량이 클수록, 방향 전환에 필요한 힘도 크다.
이것은 완고함이 아니다.
일관성이고, 검증된 삶의 방향이며, 믿을 수 있는 자기 이해 과정이다.
Walton Foundation의 2023년 조사에서
교사는 2월 51%에서 7월 63%로, 5개월간 12%포인트 증가했고,
학생은 22%에서 42%로, 20%포인트 증가했다.
학생의 변화비율이 거의 2배 빠르다.
학생들의 능력이 더 뛰어나일까?
아니다.
학생들에게 누적된 삶의 질량이 더 작기 때문이다.
아직 확립된 공부 방식이 없다.
'나는 이렇게 공부한다'는 정체성이 아직은 강력하지 않다.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바꾸고, 실험한다.
질량이 작으면 방향 전환이 쉽다.
교사들의 경우는 다르다.
평균 15년 경력. '나는 이렇게 가르친다'는 교수 방법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다.
그 확신은 15년간의 성공 경험으로 만들어졌다.
학생들이 배웠고, 성적이 올랐으며, 학부모가 감사했다.
그 방식이 작동했다. '왜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질량은 나쁜 것이 아니다.
질량은 안정성이다.
방향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빠르게 AI를 받아들이지만, 그만큼 빠르게 버릴 수도 있다.
교사들은 느리게 받아들이지만, 일단 받아들이면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관성에는 양면이 있다.
변화를 어렵게 만들지만, 동시에 변화를 지속시킨다.
그렇다면 McKinsey 연구의 26%는 무엇을 했는가?
디지털 전환에서 '문화 변화에 투자한 조직'은 5.3배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문화 변화.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도구를 바꾸는 것이 아닌, 정체성의 재구성 과정이다.
'우리는 이렇게 일한다'에서 '우리는 이제 이렇게 일한다'로의 변화다.
문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예전 방식으로 정의되던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되는 '우리'가 된다.
같은 사람들이지만, 다른 존재가 된다.
조직적 지원, 시간 배정, 교육 제공, 실패 허용, 인센티브 설계.
이 모든 것의 본질은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닌, 정체성 전환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개인이 혼자 'AI 써볼까?' 하는 것은 도구 실험이다.
조직이 '우리는 AI와 함께 일하는 팀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정체성 재정의다.
전자는 쉽게 포기할 수 있다.
'역시 내 방식이 편해.'라고 말하며 언제나 포기할 수 있다.
후자는 포기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이제 '우리가 누구인가'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AI에 대한 태도가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부정적이거나 도구적이었던 사람들이,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긍정적으로 전환된다.
이것은 설득의 결과가 아닌 경험의 축적이다.
30분 걸리던 일이 10분으로 줄어드는 첫 번째 긍정적인 성공이 있었다면,
이것은 단순한 시간 절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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