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오래 바라보던 존재가 있다.
가까워지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에서
조용히 궤도를 지나는 어떤 움직임.
닿지 않지만 닿아 있는 것 같은, 그 묘한 기울어짐.
그것은 중력이다.
끌림이라고 하기엔 조용하다.
사라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남아 있다.
내 안에서는 기울어짐이 생겼고,
나는 그 사실을 한참 뒤에서야 알아차렸다.
움직임 없이 방향이 생기는 일.
마음이 앞서지 않았는데,
중심이 서서히 옮겨가는 이상한 현상.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밀도에 가깝다.
어떤 관계는 소리 없이 시작된다.
모르는 사이에 곁에 스며들어, 이유 없는 존재의 불균형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중력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느려서, 또 오래 남아서.
내가 기억하는 몇몇은 그렇게 내 안에 무게를 남긴다.
특별한 말을 주고받지 않았어도.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았어도.
아주 먼 곳에서도 그들의 궤도가 내 안을 지난다.
이유도 없이 문득 떠오른다.
이름은 계절처럼 되돌아온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도, 존재는 반응한다.
잊은 줄 알았던 사람의 말투.
오래전 날씨.
그날의 빛과 냄새들.
아주 가끔씩 순식간에 돌아서 훅 하고 들어온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다시 중심을 잡는 것처럼.
복원이라기보다는 되돌리기에 가깝다.
회복이라기보다는 응답에 가깝다.
나는 그때마다 중력이 온다고 말한다.
잊히지 않는 것과 붙잡히지 않는 것 사이, 그 느린 작용.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균형이 있다.
붙잡지 않았는데 남아 있고,
떠나보내지 않았는데 사라지는 것들.
거리를 두었지만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반응이 남아 있는 그런 애틋함.
그 모든 잔여가 내 안에 궤도를 만든다.
나는 그 궤도 위에서 살아간다.
중력은 바닥으로 끌어내리려 하지 않는다.
흐트러지거나 벗어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모아주는 힘.
모든 것이 흩어질 때에도,
아주 멀리 밀려났을 때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향을 남겨주는 힘.
내 안의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질서.
중심이 되는 존재는 많지 않다.
모든 별이 행성이 되지 않듯이,
모든 만남이 궤도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내 안에 궤적을 남긴 존재는,
다시 지워지지 않는다.
잊혀질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요히 남아, 중심을 휘게 만든다.
나는 오늘도 내가 놓친 인력들을 생각한다.
한때는 가까웠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쳐 버린,
혹은 내가 중심을 알아차리기 전에 멀어진 어떤 인연들.
그들이 만든 미세한 휘어짐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말없이 움직이는 별들처럼.
세상은 복잡하고 감정은 흔들리지만,
중심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유지된다.
나를 묶는 것은 말이 아니라 무게다.
다짐이 아니라 궤도다.
나는 그 안에서, 내 안의 중력을 따라 조용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