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상대성

by 늘람

연인과의 거리, 0미터.

친구와의 거리, 0.45미터.

타인과의 거리, 1.2미터.

그리고, 나만의 심리적 안전거리, 5미터.


거리는 숫자가 아니다.

자와 눈금으로 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반응이다.


같은 1미터라도,

어떤 이에게는 따뜻함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숨 막힘이다.

거리는 그 자체로 감정이다.


나는 사람과의 거리를 의식한다.

불안이 아니다.

두려움도 아니다.

단지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한 거울까지의 거리일 뿐.


몸은 가까워도,

마음은 멀게 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에겐 5미터.


말없이 상대를 인식할 수 있는 거리.

내가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거리.


사회적 거리 이론은 평균값이다.

나의 거리는 경험에 의한 결과다.


갑작스러운 말,

이해받지 못한 표정,

어긋나는 시선들.

그 모든 감정의 퇴적이 만든 거리.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지킨다.

그리고, 타인을 관찰하고, 보호한다.


거리는 중력과 닮았다.

어떤 사람은 멀어도 무게가 있다.

손을 내밀 수 없는데,

잊히지도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가까이 있어도,

밀도 없는 진공처럼 아무 울림이 없다.


그래서 진짜 거리는,

물리적인 좌표가 아니라,

내가 감지한 진동의 크기다.


시간도 그렇다.

싫은 사람과의 1분은 길고,

좋은 사람과의 1분은 허무하게 짧다.


동일한 시간,

다른 체감.

시간의 상대성은 마음의 위치에서 결정된다.


서로에게 전혀 다른 1분.

그 1분들의 합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감정을 만든다.


가까워지려 할수록 멀어지고,

다가왔던 말이

멀어짐을 만든다.


나는 종종 거리의 오차를 느낀다.

상대의 다가옴이 내겐 침범이 되고,

나의 멈춤이 그에겐 회피가 된다.


모든 감정은 서로 다른 속도와

좌표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이해는 어렵고,

충돌은 잦다.


어린 시절에,

거리는 줄이면 가까워지는 줄 알았다.

가까워지면 사랑이 생기고,

이해가 시작되고,

위로가 오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어떤 관계는,

적정 거리를 유지할 때 가장 오래간다.


너무 가까우면,

진동이 흩어지고,

너무 멀면,

신호는 닿지 않는다.


우리는 그 중간을 찾으며 살아간다.

말을 건네는 타이밍,

눈을 마주치는 시간,

몸을 틀어 확보하는 공간.

모두가 거리다.

그 거리에서 관계는 태어나고, 때로는 사라진다.


진짜 친밀함은,

다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다가가지 않음으로써,

곁에 머무는 선택.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궤도를 허락하고,

각자의 속도를 인정한다.


나는 지금도,

5미터쯤 떨어진 자리에서 누군가를 바라본다.

그가 걸어오는 속도를 읽고,

나도 걸음을 맞춘다.

말없이 반응하고,

움직이며, 멈춰 선다.


거리는 마음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거리만큼 생기고,

빛이 닿을수록 길어진다.


거리의 상대성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혹은 얼마나 조심하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조용한 기록이다.


나는 그 안에서, 내 안의 상대성을 따라 조용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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