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나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햇살이 교실 유리창을 통과해 책상 위로 길게 늘어진다.
화이트보드 앞 아이들의 움직임에 맞춰 그 빛도 조금씩 흔들린다.
문득, 그 빛이 얼마나 많은 굴절과 반사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일까 생각한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대기를 통과하고, 교실 창문의 유리에 들어서며 또 한 번 꺾인다.
그리고 수많은 반사와 굴절을 거쳐 우리의 망막에 상을 맺는다.
우리는 흔히 이 경로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경로에는 작은 저항과 수많은 반사와 굴절이 있었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장도 그렇다.
부모와 교사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의 경로를 바꿔 버리는 유리창이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그저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싶다는 선한 마음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그 유리는 너무 두꺼워지고, 빛은 그 본래의 방향성을 잃는다.
나는 종종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 나는 아이들의 가진 빛의 방향을 내 기준에 맞춰 함부로 바꾸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시대 가장 흔한 교육적 오류는 '나의 성공적 경험, 나의 옳다고 믿는 가치'를 보편적 진리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해서 잘 되었다", "나는 이런 길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들이 수없이 교실과 가정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그 말들이 전하는 본질은 다른 무엇보다 더 무거운 강요다.
빛은 서로 다른 매질 사이에서 속도가 바뀌고, 그에 따라 방향도 바뀐다.
아이가 본래 품고 있던 가능성도 닮았다.
부모와 교사라는 매질 속을 통과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방향이 바뀐다.
우리는 흔히 그 휘어짐을 '성장'이라 부르지만,
그 휘어짐이 아이 고유의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닐까.
뛰어난 미적 감각을 지닌 아이가 있다.
그림과 디자인에 남다른 감각을 보이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미술은 취미로만 해. 공부에 방해돼."라는 부모의 말에
그 아이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세계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공부라는 '올바른 방향'만을 강요받았다.
빛은 더 이상 고유한 경로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전보다 더 흐릿해졌다.
교육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은 아이를 나의 현재치로 가두는 일이다.
나의 현재치—내가 이룬 성과와 삶의 방식, 세계에 대한 이해—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은 시대적·환경적·우연적 조건 위에 형성된 결과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그것을 보편적 모델로 삼아 아이에게 강요한다.
그리하여 아이는 '나의 복제품'이 되어간다.
하지만 복제품이란 원본보다 결코 더 멀리 가지 못한다.
오히려 더 흐릿하고 더 제한된 경로를 걷게 마련이다.
에너지는 보존된다.
그러나 에너지가 가장 창발적으로 작용하는 순간은 열린 시스템 속에서다.
닫힌 시스템에서는 에너지가 갇혀버린다.
아이에게 특정한 길, 특정한 모습만을 강요하면 교육은 닫힌 시스템이 된다.
아이의 창발적 가능성은 억제되고, 새로운 에너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아이가 내가 아는 최선으로 성장하길 원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최선은 그 존재의 가능성 전체보다 항상 좁다.
아이는 내가 모르는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는 똑똑한데 게으른 것 같아요."
"우리 아이는 제가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와요."
부모의 이런 말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제가 숨어 있다.
'나는 이만큼 이루었고, 아이도 그만큼은 되어야 한다'는 기대감.
그러나 그 기대는 본질적으로 아이의 고유한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중력장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달라진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마다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빠르게 배우고 익히지만, 누군가는 더디게 그리고 깊게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는 일—그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다.
상대의 시간성(time consciousness)을 존중하는 깊은 윤리적 태도다.
나는 기다림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종종 실감한다.
한 학생은 수학에서 늘 어려움을 겪었다.
부모는 조바심을 냈고, 나는 좀 더 기다리기를 부탁했다.
아이는 성실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서두른 아이들보다 다양한 수학적 사고를 통해 어려운 문제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해 내는 우수한 수학적 능력을 가진 아이로 성장했다.
성장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흐른다.
나는 이런 바람을 갖는다.
아이의 빛을 구부리지 않는 교육,
빛이 고유한 경로로 흐르게 안내하는 교육,
그리고 그 결과, 다양한 색으로 아름답게 채색된 수많은 세상의 모습을 만나는 것.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본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여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라."라고.
그렇게 키운 아이의 최대치는 바로 현재의 본인일 뿐이며, 더 나은 성장은 결코 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는 내가 모르는 가능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우리는 자주 '나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최선은 나의 경로를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존재는 본질적으로 열린 시스템이다.
외부와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간다.
아이는 내가 닿을 수 없는 가능성의 지평을 품고 있다.
아이를 나의 유리창 속에 가두지 말고, 더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빛은 저마다의 경로로 흐른다.
우리의 할 일은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