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익숙한 길보다 새로운 길을,
보이는 결과보다 열리지 않은 가능성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낯설다.
선택의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가 있다.
그 선택이 처음부터 필연은 아니다.
우연한 계기, 작은 충동, 혹은 별다른 생각 없이 내린 결정.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선택은 내 삶의 길을 굳혀간다.
언제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고 믿지만,
시작한 경로는 의존성을 만든다.
경로의존성.
한 번 만들어진 경로는 선택의 폭을 좁힌다.
이미 걸어온 시간,
이미 쌓인 익숙함,
이미 만들어진 흐름은,
새로운 시작을 어렵게 한다.
경제 시스템도,
조직의 문화도,
인간관계도,
개인의 감정조차도 그렇다.
일상이 식상이 된다.
자주 걷는 동네의 산책로.
처음은 우연이었지만,
그 후로는 늘 그 길로 걷는다.
익숙함은 안정감을 주지만,
변화를 방해한다.
기술, 조직, 관계.
처음의 작은 선택이 축적되고 고착된다.
QWERTY 자판.
더 효율적인 배열이 나와도,
이미 형성된 경로의존성은
변화를 방해한다.
학습 비용, 사용자 저항, 기존 인프라.
익숙함의 핑계가 변화의 저항선을 만든다.
마음도 그렇다.
처음 학습한 감정적 대응의 모습은,
마음 속 기본 경로가 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비슷한 반응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나'의 일부가 된다.
처음의 우연한 물살이 이후의 흐름을 지배한다.
작은 가지 하나가 커다란 나무의 방향을 결정하듯,
가벼운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선택이다.
흐름을 따라 흘러갈 것인가.
흐름을 거스르며, 나의 진동을 만들어 갈 것인가.
그리고,
거스르는 흐름을 선택한다.
나의 본성이고, 존재의 방식이다.
시간은 경로 위에서도 흐른다.
그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처음의 선택은 시간의 흐름이 쌓여 두터워진다.
발을 딛고 있는 이 길 위에서,
어디쯤이 과거이고,
어디쯤이 미래인지 모호해진다.
시간의 팽창과 응축 속에서,
선택의 흔적들은 잔잔한 파동처럼 남아,
나를 흔든다.
때로는 익숙한 진동을 넘어서고 싶다.
무엇을 선택할지보다,
그 선택에 의한 변화를 자각하고 싶다.
오늘도 의식적으로 한 걸음씩 다른 결을 시도한다.
수많은 삶의 경로에서,
더 나은 쪽이 아닌, 덜 굳어진 쪽으로.
혹은 아예 새로운 길로.
익숙함의 벽, 투자한 시간, 주변의 기대.
모두 되돌아 오라 손짓하지만,
변화는 벽을 넘어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
존재는 고정된 흐름이 아니다.
고정된 길을 걷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경로 의존성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다.
익숙함을 깨는 선택,
낯선 진동을 따르는 걸음.
그것이 나의 길이다.
선택은 하나의 순간이 아니다.
경로를 만드는 씨앗이다.
그 씨앗이 자라날 방향을 지켜보는 일,
늘 조금은 불안하다.
오늘 내가 내딛는 한 걸음도 가볍지 않다.
나는 오늘도 익숙한 길에서 고개를 돌린다.
아직 발 디디지 않은 길, 그 낯선 길에서만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기에.
그 작은 시선조차, 언젠가 새로운 존재의 길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