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잃어버린 딸의 아버지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일용직 건설노동자의 이야기

by 유최늘샘
“돈을 벌어야 먹고 사니까 돈 따라 다닌 거야. 나는 안 해 본 일이 없어.
전국으로 안 돌아다닌 곳이 없어.”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필자는 한 보잘 것 없는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江華

강화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을 끼고 있는 고을이라 강하(江下)라 부르다가 강 아래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의 강화(江華)로 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01.박한조.추가.jpg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일용직 건설노동자 박한조 님

남한 일주 여행을 기획하고 전국으로 떠나기 한 달 전, 연습 삼아 1박 2일로 가까 강화도에 갔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과 거리에는 약속 장소나 집으로 향하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옅은 설렘의 향기를 띤 사람들로 붐볐고, 유난히 긴 겨울 끝자락의 찬바람이 그들의 뺨을 스쳤다. 신촌에서 3000번 좌석버스를 타고, 서쪽 바다에 닿아가는 한강을 따라 두 시간을 흘러 강화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웠다. 대합실 가운데 놓인 TV를 보거나 휴대폰 통화를 하며, 사람들은 타고 갈 버스나 돌아올 사람을 기다렸다.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고, TV 속 아나운서와 연예인들의 목소리만이 대합실의 정적을 채웠다.


지도를 살펴 방향을 어림잡고 달빛 아래 섬의 동북쪽으로 서너 시간을 가뿐히 걸어가는데, 불현듯 장총을 든 젊은 군인 두 명이 길을 막아섰다. 민간인통제구역(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南方限界線)으로부터 5∼20㎞ 밖에 민간인 통제선(民統線 : Civilian Control Line) 이설정되어 있는데, 민통선에서 남방한계선까지의 지역을 민간인통제구역이라고 말한다.)이라 주민 이외에는 갈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관광지도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고 따져도, 나 한 사람만 조용히 지나가게 해 달라 부탁해도, 철모를 쓴 군인의 규칙은 여행자의 사정 따위는 배려하지 않았다. 파주, 연천, 철원, 고성, 경기도와 강원도의 휴전선 주변으로 이처럼 통제되는 길들이 얼마나 많을까,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시골 교회 한쪽에 쪼그려 앉아 새벽 추위를 피하고 길 위에서 새아침을 맞았다. 앞으로 전국 여행에서 만날 많은 사람들 중의 첫 번째 사람을, 오늘 꼭 운명처럼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스치는 사람들을 살펴보며 걸었다. 하지만 막상 누구에게 어떤 말로 다가가야 할지 전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친화력이 약한 사람이다. 갯벌 너머 바다 건너 황해도 연안군이 아렴풋이 보이는 석모도 해명산 산행을 하고 내려왔을 때는, 갑자기 한쪽 발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왔다. 몸을 쉬어 주지 않고 계속 걷다간 금방 발병이 난다는 걸 깨달았다. 내 나름에는 거창한 각오로 계획한 구도 여행이 시작부터 어긋나는 것 같아 자신감을 잃고 슬퍼졌다.


1.석모도.해명산.황해도연안군.jpg 강화 석모도 해명산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북한 황해도 연안군이 보인다.

맥없이 절뚝거리며 서울로 돌아갈 버스를 타러 가다가 외포리 정류소에서 박한조 아저씨를 만났다. 까만 모자를 삐뚜로 눌러 쓰고 리어카에 걸터앉아 “그래, 그럼 소주나 한잔 사.” 하며 반겨주셔서, 아프던 다리가 씻은 듯 낫는 기분이었다. 이 우연한 첫 만남이 없었다면 사람을 만나고 길을 구하는 이 여행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이 운명이 되는 순간!


1955년생인 아저씨는 워낙 어릴 때 떠나와서, “경상도 어디쯤”인 고향의 지명을 선뜻 기억해내지 못한다.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 할머니 손에서 컸고, 지금도 돌아보면 제일 그리운 건 그 어릴 적 돌봐주신 할머니의 정이다. 스물네 살 때 장가를 갔고, “마누라는 전라도 여자였는데” 딸을 낳고 몇 년 후, 말 못할 사연으로 이별하게 된다.


“살아있으면 서른 살쯤 됐을 거야...”

유일한 피붙이 어린 딸을 인천 부평에서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 “스스로가 제일 원망스럽고 가슴이 찢어지듯 아픈” 일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 잊고 살려고 노력해도 결코 떠나지 않는, 겪어보지 않은 누구도 모를 심정이다.


돈을 벌어야 먹고 사니까 돈 따라 다닌 거야. 나는 안 해 본 일이 없어. 전국으로 안 돌아다닌 곳이 없어.”

이십 대 때는 서울 화양동 백룡 아스타일 공장에서 타일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보통의 월급이 17, 18만원 정도였는데, “PVC가루랑 돌가루를 마시며 일하는 게 몸에 엄청 나빠서”, 다른 곳들 보다 많은 이십 몇 만원을 받았다. “뱃생활”을 하는 뱃사람으로 원양과 근해를 누비기도 했다.


강화에 온 지는 이십 년이 지났다. 읍내 소방도로변, ‘물보라’ 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한때 작은 술집이었던 곳에서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사글세로 살고 있다. 7, 8년 전부터는 “날일”을 하는 건설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새벽이면 건설사무소로 출근해 집을 짓거나 수리하는 일을 한다.


하면 됩니다, 무조건 하면 됩니다, 그래. 무조건 빨리빨리 하라고 그래.”

건설 일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문제점은 ‘하면 된다’며 속도를 강조했던 정주영으로부터 시작돼 이명박 대통령을 지나 지금까지 이어지는, 건설 업계에 만연한 ‘빨리빨리’ 풍조다.

“일은 FM(Field Manual, 교범) 대로 해야 되는데, 없는 사람들이 힘이 한계가 있는 건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빨리 하라고 밀어붙이니까 부실이 되고, 사람이 다치는 거야.”

5년 전에는 그런 문제로 인해 건설사무소 사장과 싸운 적이 있다. “어차피 나는 없는 놈이고, 이리 와봐! 부실을 하면서 돈을 벌어먹겠다고 그러면 되냐!”고 따졌다. “당장 라면 한 개 못 먹는 없는 사람들끼리 백날 싸워 봐야” 소용없으니, 싸우려면 돈 많은 사람들이나 업자들과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1.강화.박한조4.물보라.jpg 강화읍. 문을 닫은 '물보라' 식당에서 사시는 아저씨에게 식사를 대접받고 나오는 길. 아저씨와 함께 사는 고양이가 보인다.


물불 안 가리고 직설적인 성격이지만 “착하게, 내남없이” 살아왔다. “죽으면 재산도 다 필요가 없는 거고, 다문 얼마, 단돈 천 원이라도 생기면 이웃을 위해 쓸려고 그래.” “자신의 양심을 절대 속이면 안 되는 거”라고 믿고, 그렇게 살아간다.

두 가지 바람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작은 땅과 작은 배 한 척이다. “100평이나 한 200평” 땅이 있으면 집도 짓고 텃밭 삼아 뭐라도 심을 수 있고, 거기에 조그마한 보트 하나 있으면 좋아하는 낚시해서 조금씩 팔아먹으며,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그러려면 최소한 2억 정도는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당장은 할 수가 없다.


삶은 계란 서너 개에 소주 세 병이 비워지고, “오늘 한 잔 얻어먹지만 언젠가 내가 또 갚을 거야” 하던 아저씨가 “강화쌀 한 번 먹어볼래?” 하신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는데 집에 가서 강화도에서 난 쌀로 밥을 해줄테니 먹고 가라는 얘기였다. 여행자의 특권이라며 염치를 멀리 던져두고, “네.” 라고 배고픈 나는 선뜻 대답했다. ‘물보라’의 조그맣고 아늑한 방에서, “나도 어제 저녁부터 한 끼도 안 먹었어.” 하는 아저씨와 함께, 배부르게 하고 마음 따뜻하게 하는 강화쌀로 지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달리고 노래하는 별들

강화군 강화읍 강화중학교 2학년 이우빈 이진규 님

2.강화.이우빈,이진규.jpg 강화군 강화읍 강화중학교 2학년 이우빈 이진규 님


한조 아저씨의 ‘물보라’를 나와 강화 읍내 터미널로 가는 골목길을 지나다가 수업이 끝나고 방황하는 중학생 우빈이와 진규를 만났다. 가까운 건물에 태권도 학원이나 검도 학원이 있는지 아이들의 맑고 우렁찬 기합 소리가 끊임없이 동네를 울리며 활기를 불어넣는 오후였다.

두 사람에게 말을 걸고 내 여행과 계획을 설명하는 것은 처음보다 자연스럽고 쉬워져 있었다. 다행히 진규와 우빈이도 카메라 앞에 서고,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우빈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대표하는 육상 선수였고 달리기를 제일 좋아한다. 진규는 독특한 도토리 헤어스타일에 걸맞게 비트박스를 한창 연습 중인 가수 지망생이다. 좋아하는 과목도 각각 체육과 음악. “100미터는 12초 정도 뛰는데요, 육상 쪽으로 진로를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계속 달려 보려고요.”


우빈이가 방과 후나 주말에 친구들과 주로 가는 곳은 “PC방 아니면 노래방”. “PC방에서는 요새 ‘서든 어택’ 이라고, 아세요? 총 쏘는, 저격 게임인데 그거 주로 해요. 강화도는 다 좋은데 재밌게 놀 게 별로 없어요.”

아직 앳된 열다섯 살이라 나중에 어른이 돼서 뭘 하게 될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아직 없다.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게, 그냥 남들처럼 살고 싶어요.”


실용음악 학원에 다니며 노래를 배우는 가수 지망생 진규는 한류스타 비의 <Only you>라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 영화관에 가는 것도 무척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강화도에는 영화관이 없다. 영화를 한번 보려면 김포나 인천, 일산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1963년 최초로 개관한 강화극장과 1983년에 개관한 중앙극장은 도시화와 이농으로 강화도의 인구가 줄어들며 폐관되었다. 내 고향 통영에서도 봉래극장, 포트극장, 만복극장이 세월따라 문을 닫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역 극장들이 사라지고 개성 없는 멀티플렉스 극장들만 살아남는 현실이 안타깝다. 진규가 여태껏 제일 재밌게 본 영화는 <미녀 삼총사> 시리즈.


2.강화.이우빈,이진규2.jpg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동아리 활동에서는 당구 동아리를 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3학년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서 학교 생활이 편한 편이다.

“학교 규정들이 좀 까다롭게 느껴져요. 세상이 좀, 자유로워지면 좋겠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걸 많이 하면서 살고 싶네요.”


강화도 읍내의 골목길을 누비는 새파란 별들. 회색 교복을 입은 천진난만한 열다섯 살 소년들은 앞으로, 아마도 다사다난하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할 것이고, 아마도 다른 많은 청년들처럼 섬을 떠나 도시로 갈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일자리를 찾아서, 세월의 흐름을 따라서. 그리고 강화의 좁은 골목길은 소년들의 달리기와 노래를 오래도록 품고 있을 것이다. 힘껏 달리는 우빈이의 뺨을 스치는 바람이 내내 싱그럽기를, 진규의 노래가 내내 자유롭기를.



* <남한사람들>은 두 번째 여행지 천안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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