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쌀집에서의 65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대흥동 역전상회 이야기

by 유최늘샘
“전 국민의 칠팔십 프로가 업종이 농업이었고,
농사져서 먹고 사는 것이 기본이었쥬.”

*天安

천안이라는 지명은 ‘천하대안(天下大安)’의 준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하늘 아래 가장 살기 좋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천안을 보면 삼남의 형편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3.천안.신용신.jpg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대흥동 역전상회 신용신 님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얼어붙고 먼지 앉은 도시 위로 봄기운을 머금은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쪽으로 향하다 천안역에 내렸다. 휴대폰 가게와 옷가게들이 세련된 간판 아래 최신가요를 틀어놓고 복작복작 시선을 끌고 있는 거리 중간에, 무척 오래돼 보이는 쌀집이 눈에 띄었다. 쌀집 안에는 짙은 분홍빛 털모자가 눈에 띄는 온화한 표정의 주인 할아버지와 단골손님인 할머니가 콩나물을 기를 콩과 찹쌀을 흥정하고 있었다.


“이 양곡상 역전상회는 해방 후에, 1946년에 저희 어머니가 문을 열어서, 이후로 65년 동안 2대를 이어져온 가게에유, 이 가게가... 제 아버지는 제가 세 살 때 먼저 돌아가시고 어머님 혼자서 운영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제가 도와드리구.. 그러다 2009년, 어머니는 97세를 일기로 돌아가시고, 이제는 제가 혼자서 그럭저럭, 가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3.천안.신용신.역전상회.jpg

신용신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방을 맞았고, 스무 살에 “대학교에 1년 다니다가” 교사 자격을 얻어 국민학교 선생 일을 했다. 당시 교사와 대학생들은 남들보다 군대 복무기간이 짧아서 1년의 군대 생활을 한 뒤, 스물네 살에 결혼을 했고, 스물아홉 살이었던 1966년도부터 어머니 혼자 해오시던 가게를 돕기 시작했다.


“전 국민의 칠팔십 프로가 업종이 농업이었고, 농사져서 먹고 사는 것이 기본이었쥬.”

1960년대, 70년대에는 아침 먹고 나와서 저녁에 문 닫을 때까지, 얘기할 새도 없이 바쁘고 장사가 잘 됐다.

아우내장터* 들어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우내장터에서는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때에요, 그때가...”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에 곡식을 담았고 차가 드물어 마차로 짐을 실어 날랐는데, 지금 그런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고 이제 손님은 거의 없지만, 할아버지는 대를 이어 역전 양곡상을 지키고 있다.

“가만히 놀 수도 없으니 그냥 가게 지키고 있는 거예요...”


“나이든 노인네들 섬길 줄 알고, 약한 사람들 도와주고, 그거 상당히 중요한 거 아녀, 그게?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예전에는 이 사회에 그런 도덕관념이 대단했는데, 요즘은 “남 잘못 흠잡기는 잘하면서 정작 스스로들은 지켜야 할 걸 안 지키는” 태도가 안타깝고 눈살 찌푸려진다. “자기주장만 펴지, 그냥, 자기주장만 펴지, 공적인 거 생각 안 해...” 가게 앞 도로에 내버려지는 꽁초는 매일 매일 주워내고 주워내도 끝이 없다.


동갑인 아내와 함께 아들 셋과 딸 둘을 키워 냈고, 올해 막내딸이 시집을 간다. “일흔 넷이면 이제 다 된 거 아녀?! 이제 인생 말년이여, 인생 말년! 이제 인생을 어떻게 잘 정리하고 죽느냐... 그거지...” 뭔가를 더 이루고 싶거나 했으면 하는 바람은 없다.


가게와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할아버지는 가게 곳곳에 놓인 “구닥다리”라고 부르는 오래된 물건들을 간직해왔다는 듯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었다. 곡식을 골라낼 때 쓰던 여러 가지 크기의 채들과 손때가 까맣게 묻어 만질만질해진 주판과 나무로 만들어진 “1데시리터짜리 되”와 오랜 시간 한 공간에서 둘이 함께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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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안 역전상회의 곡식을 사 먹고 살아온 단골손님들도 역전상회의 역사만큼, 역전상회를 지킨 신용신 할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어왔을 것이고 하나둘 발길이 끊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같은 몇 개의 대형마트가 전국의 상권을 장악하고 온라인 시장이 점점 더 성장하는 시대의 젊은 사람들은 역전상회와 같은 오래되고 작은 가게들을 찾지 않는다. 천안역 앞에 자리잡고 65년을 살아온 역전상회는 이렇게 고요하고 쓸쓸하게 시대의 뒤안길을 바라보고 있다.


참! 처음부터 인상적이었던 진분홍빛 털모자의 내력도 웃으며 알려주셨는데, “따듯하기도 하고, 어두운 색깔보다는 눈에 잘 띠니까, 차나 위험한 것들이 알아서 피해가라고” 곧 시집가는 딸이 얼마 전에 선물한 모자라고 한다. 참 잘 어울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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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패.이황희(봉황빛날희),신용신.jpg

*아우내 장터.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있는 장터. 아우내란 ‘두 개의 내를 아우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부터 전국의 상인들이 청주·진천·조치원·예산 등에서 지역 특산물과 소를 몰고 와 장을 형성하였으며, 인근 장터 가운데 가장 크게 번성하였다. 1919년 4월 1일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를 불렀던 곳으로 주변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조병옥 박사 생가가 있다.


* <남한사람들>은 세 번째 여행지 칠갑으로 이어집니다.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필자는 한 보잘 것 없는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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