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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Mar 30. 2018

달려라 자전거

전북 군산시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사람들

멋진 기암괴석이나 아름다운 강이나 산을 만날 때, 참... 인생의 살맛을 느낍니다. 국내를 다 돌아보고 나면 해외에도 나가서 자전거를 탈 생각입니다. 
계속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몸이 좀 건강했으면 좋겠지요.
전라북도 군산시 경암동 버스터미널 자전거 동호인 마용남 님

群山

산이 무리지어 있다는 뜻의 군산. 하지만 군산에는 높은 산이 없고 오히려 금강과 만경강, 황해의 물에 둘러싸여 있다. 고려 때의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지금의 고군산도를 가리키는 군산도(群山島)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어떤 연유로 섬을 가리키던 지명이 진포가 자리하던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져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서천에서 군산으로, 충청남도에서 전라북도로 건너왔다

  초록빛과 자줏빛의 보따리들이 동그랗고 통통한 모습을 하고 터미널 곳곳에 앉아, 봇짐 주인 아주머니들과 함께 완행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의 아저씨들은 주름진 손에 작은 차표를 쥔 채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정류장 한 구석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매점 커피를 마시고 있는 멋진 복장의 자전거 여행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전거 동호인 마용남 아저씨는 열하루 전 부산 반송동에서 출발해 “제주도, 완도, 청산도, 영암 월출산, 나주, 고창, 새만금방조제를 거쳐” 군산에 도착해, 10박 11일 간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참이다. 동호회에 가입돼 있어서 매주 주말 동호인들과도 자전거를 타지만, 가끔 여유가 생기면 이렇게 혼자 열흘가량 여행을 떠나곤 한다. 


  “길 위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면 춥고 지칠 때도 많지요. 

  그래도 다시 아침 해가 떠오르면 기운이 납니다.” 

  힘든 하루가 지나 휴식의 밤이 오고, 다시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엄청나게 단순한 문장을 얘기하시는데, 이상하게도 울컥 감동이 느껴졌다. 천만 년 반복되는 해와 달의 하루를, 그저 익숙하게 보내지 않고, 고독한 길 위에서 온몸으로 겪어 내는 여행자의 땀냄새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 건강에 좋고, 차비가 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부산 토박이라고 하셨는데, 부산 사투리가 아니라 초등학생이 국어책을 읽듯이 표준어로, 짧을 문장들과 존댓말로 대답하셨다. 카메라 앞이라 긴장을 하신 것 같기도 했지만, 워낙에 부끄러움도 많고 순한 성격이신 것 같았다. 


  “좋은 점도 있지만 자전거를 타면 힘이 많이 들고, 그 힘을 보충해 주려면 밥이랑 고기를 많이 먹어야 됩니다. 저녁에 쉬면서 많이 먹지요. 또 고기를 먹다 보면 술도 한 잔 하게 되니까 밥값은 많이 듭니다.” 

  그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어디가 가장 좋으셨나고 물었다. 


  “아무래도, 멋진 기암괴석이나 아름다운 강이나 산을 만날 때, 참... 인생의 살맛을 느낍니다. 국내를 다 돌아보고 나면 해외에도 나가서 자전거를 탈 생각입니다. 계속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몸이 좀 건강했으면 좋겠지요.”


  “젊을 때부터 쭉 해오던 일은 쇠를 깎는 선반기계 엔지니어 일이었는데, 그쪽으로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어서 지금은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청소 쪽,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부인과 대학생, 중학생인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애들한테는 평소에, 아침에 좀 일찍이 일어나고, 열심히 꿈을 향해 가면, 그건 꼭 이루어진다고, 그렇게 늘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엄청나게 도덕 교과서 같은 대답을 하신다. 마용남 아저씨의 삶과 꿈은, 땀 흘리며 일해서 가족을 꾸리고, 시간이 나면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었나 보다. 두 자녀가 이런 아버지의 레퍼토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곘지만 나에게는 아저씨의 도덕 교과서 같은 말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평소에 ‘노력과 성공’이라는 가치관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사람살이의 여러 문제를 개인의 노력 여하로만 판단하게 하고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보지 못하게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사회, ‘20대 80’으로 표현되는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심화되는 사회,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에서,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고 배웠다. 

 

 이런 저런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며 살아온 가난한 청년으로서, 우리 사회가 사회적 부를 가난한 사회 구성원들과 나누고, 낮은 곳에 사는 약자들이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하고 바란다. “억울하면 성공해.” 라는 냉혹하고 이기주의적인 노력의 강요가 아니라 함께 어려움을 해결해 가며 따뜻함을 느끼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공교육이나 미디어가 유포하는 물질적인 성공이 아니라, 마용남 아저씨가 말하는 노력과 꿈, 소박한 행복을 향해 살아가려는 의지라면, 그런 ‘노력과 성공’은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도 아내를 만나고,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자랄 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그 전에, 지금 내 삶의 가치관은 어떤 단어들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부산행 시외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왔다. 마용남 아저씨가 버스 옆구리의 짐칸을 열어 자전거를 싣는다. 수많은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강과 산과 바다를 보며 함께 달린, 소박한 행복의 자전거도, 이제 좀 쉴 시간이다.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필자는 한 명의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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