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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03. 2018

히말라야, 나마스떼, 당신 안의 신에게

늘샘의 네팔 안나푸르나 배낭여행기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는 육천만 년 전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육천만 년이라니, 그런 계산은 누가 어떻게 해내는 것일까. 달과 태양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의 직경은 약 9만8천 광년인데 그 중심에는 블랙홀이 있을 거라거나,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내가 거대한 우주의 한 점 먼지처럼 느껴지고, 한편으로 엄청난 신비로움을 느끼곤 한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梵語) ‘히마(눈)’와 ‘알라야(거처)’가 결합된 단어로, ‘눈이 사는 산’이라는 뜻이다. 광대무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만년설’이라 불리던 히말라야의 눈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서서히 녹아가고 있다.   


  기원전 623년 사라수(沙羅樹) 그늘에서 마야 데비가 고타마 싯다르타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네팔 남부 국경마을 룸비니에 머물다가, 히말라야 ‘ABC’로 가는 길목 포카라에 도착했다. 히말라야를 만나는 세계적인 등산 코스 중의 하나가 속칭 ABC,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nnapurna Base Camp)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을 뜻한다.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8,091미터의 안나푸르나 산과 ‘물고기 꼬리’로 불리는 6,993미터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있는 곳. 일반 여행자는 해발 4,130미터의 베이스캠프까지만 갈 수 있다. 


  빙벽 등반을 할 수 있고 ‘생존의 가능성이 있는’ 전문 산악인들만이 베이스캠프 보다 더 높은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베이스 캠프는 산악인들의 묘지이기도 하다. 로지(Lodge, 일종의 산장) 뒤편에는 안나푸르나 등반 도중에 죽은 수많은 산악인들의 돌무덤들이 여기저리 자리하고 있다.    


  일주일 정도 예정으로 산행을 준비했다. 해발 3,000미터, 4,000미터에 오르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걸린다는 고산병을 대비한 알약과 식수를 만들기 위한 정수제 알약을 준비했다. 산을 쉽게 보면 안 된다며, 꼭 등산화를 사거나 빌려 신어야 한다는 충고를 여러 사람들에게 들었지만, 나는 내 가벼운 운동화를 믿기로 했다. 대신 신발에 들어오는 눈과 비를 막아줄 큰 비닐봉지를 몇 개 챙겼다. 

  에너지바와 라면, 식수로 가방을 가득 채우고 간드룩, 콤롱, 촘롱, 시누아, 밤부 마을을 지나 걷고 또 걸었다. 오르고 또 올라갈수록 로지(lodge)의 물가는 산 아래 가격의 몇 배씩 상승했으므로 주로 가장 저렴한 메뉴인 삶은 달걀과 스파게티로 영양을 보충해 주는 소중한 끼니를 해결했다.

  험난한 등산길에서 만나는 산기슭 중간 중간의 작은 마을들은 오아시스와 같았다. 그 오아시스들은 그러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낯선 여행자들, 수많은 등산객들에게 제공되는 잠자리와 먹거리는 현지 사람들의 힘겨운 노동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버스가 닿는 산 중턱에서부터 산 깊은 곳으로, 다음 마을로, 또 그 다음 마을로, 감자나 통조림 따위의 식량과 생필품들은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운반되고 있다. 머리와 어깨로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마을 사람들은 수 천 개의 높다란 돌계단을 한 걸음씩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빛바랜 샌들과 낡은 슬리퍼를 신은 채로. 그 옆으로, 튼튼한 방수등산화를 신은 여행객들이 성큼성큼 지나간다. 그들의 짐을 대신 진 포터들이 뒤를 따른다. 찢어진 잠바를 입고 회초리를 든 까까머리 목동 소년은 자기 보다 몸집이 큰 수 십 마리 당나귀 떼를 이 산 저 산으로 몰고 다닌다. 

  하루하루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눈앞으로 가까워지고 3박 4일 째 마침내  베이스캠프 ABC에 도착했다. 산 아래는 꽃피는 봄날이었는데 과연 고지대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겨울 날씨처럼 추웠다. 가지고 있는 옷가지를 모조리 껴입고, 로지에서 제공하는 담요 한 장을 덮고 덜덜덜 떨면서 겨우 겨우 잠을 청했다. 이튿날 날이 밝고, 아침을 먹고 베이스캠프를 한 번 더 둘러본 뒤,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그 먼 곳까지 갔는데, 그 높은 곳까지 겨우 올라갔는데,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며칠 더 머물 걸 그랬나. 그건 글을 쓰는 지금의 아쉬움일 뿐, 그때의 추위와 배고픔은 하루도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비스딸레 비스딸레(Bistārai, बिस्तारै, 네팔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갈 때와 달리 가벼운 발걸음, 가뿐한 마음으로 순식간에 내려오는 길에는 산등성이에 걸린 안개도, 작고 오래된 마을들도 더욱 다정하게 느껴졌다. 내리는 비에 운동화와 옷이 젖고,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거머리에게 물려도 마냥 좋았다. 여행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3박 4일만에 올라간 길을 1박 2일 만에 ‘고속 하산’ 했다. 지누(Jhinu) 마을의 계곡 노천탕에 풍덩 빠져 몸을 씻고, 포카라에 돌아와 식당 ‘소비따네’를 다시 찾았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허기를 달래준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는 한국식 김치찌개를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배가 고프다. 소박하고 넉넉한 디디(언니), 다이(오빠), 브이니(여동생), 바이(남동생), 네팔에서 만난 친구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마음과, 히말라야의 웅장하고 서늘하고 슬프고도 따듯한 품이 그립다. 나마스떼, 단야밧, 당신 안의 신에게, 당신 안의 히말라야에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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