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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06. 2018

인생은 부메랑?

전북 김제 만경읍 농부와 이주노동자 이야기

 “땅은, 항상 진실 된 게 땅이에요. 내가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대가가 나오는 거죠.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로, 부메랑 인생입니다.”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흙바라기 365 영농법인 김영훈 님

萬頃   

만경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밭 사이의 경계(두둑)가 만 개라는 뜻인데, 이는 곧 ‘들이 넓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작지가 광활함을 일컫는 말이다. 『여지도서』의 "백제 때 두내현을 창설하고, 신라 때 만경현으로 이름을 바꿨다."라는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만경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95년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에 속하게 되었고, 만경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김제시 만경읍이 되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의 평야를 두고 ‘징게맹경 외애밋들’이라고 부르는데, ‘징게맹경’은 김제와 만경, ‘외애밋들’은 너른 들, 곧 ‘김제 만경의 너른 평야’라는 뜻이다.


  군산에서 만경강을 건너자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읽던 ‘만경평야’와 ‘김제평야’가 펼쳐졌다.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의 망해사(望海寺) 방향으로 가는 읍내 버스에서 만난 뷰티학과 대학생 스물두 살 아름이와 식품학과 대학생 열아홉 살 희연이는 주말이면 대학가의 자취방을 나와 농사짓는 부모님이 있는 고향집으로 간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향집이 있는 마을에서 함께 버스를 내리게 됐다. 물이 채워진 너른 논에서 네댓 명의 농부들이 다 자란 연근을 골라 뽑고 있었고, 다른 농부들은 창고의 컨베이어 세척기에 붙어 서서 수확한 연근을 씻어내고 있었다. 


  이곳 농장에서는 농부를 흙지키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자매의 아버지이자 영농법인 대표인 김영훈 씨에게 흙바라기 농장의 소개와 농사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의 어릴 적 꿈은 파일럿이었다. 미국산 옥수수 가루와 우유 가루를 배급받아 먹던 어릴 적, “미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길래, 나한테까지 이걸 보내줄까?” 궁금해 하며, 파일럿이 되어서 외국에 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일럿이 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고, 81학번으로 입학한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서울에서 세일즈맨이 된다. 

 

  “처음 영업한다고 거리에 나가서 하나도 팔지 못하고 열흘 째 되던 날,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자에게 처음으로 화장품을 판 게 기억나는데, 그 여자가 누군지, 지금은 뭘 하고 사는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제가 세일즈맨을 하면서 식당에 납품하는 ‘일매껌’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에는 8억, 9억대의 별장이나 분당의 상가까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온갖 물건들을 다 팔아봤어요.” 


  물건을 못 팔았을 때는 번 돈이 없기 때문에 차비를 아끼기 위해 집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걸으면서 10원의 가치, 100원의 가치를 체험했죠. 제 성격이나 목소리가 원래 이렇지가 않았어요. 그 당시 성격 개조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기 위해서 스피치 강의나 리더십 강의도 많이 찾아 들으러 다니면서 바뀐 거죠. 그때 ‘학채(學債) 없는 배움은 없다’ 는 걸 깨달았어요. 남산에 올라가는 비용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는 서울의 경치를 볼 수 없죠.” 

  스피치 학원에 다닌 효과인지 말씀을 정말 술술 잘 하신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시작한 지는 이십 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망해서 내려왔네, 부모 재산 욕심내서 내려왔네,’ 별의별 말을 다했죠. 그런 말들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그 몇 십 배의 부를 늘려 놓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귀향해서 성공한 케이스로 넣어주더라고요... 농업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연구와 노력을 통해서 새롭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하면 충분히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하죠.” 


  “흙바라기 365 영농법인은 흙만 바라보고 사는 농부들이 모여 우리 국민의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이에요. 외국 농산물이 밀물처럼 들어오는 이때, 수입을 못하게만 막을 게 아니라 우리도 좋은 농산물을 길러 수출을 해야죠. 우리 농민들끼리 경쟁해서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거죠.” 

  지금 농사짓는 연근도 4, 5년 뒤에는 수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연근 농사를 짓는 논

  “땅은, 항상 진실 된 게 땅이에요. 사람은 배반을 하고, 사람보다 덜 배반하는 게 동물이지만, 동물보다 덜 배반하는 게 땅입니다. 내가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에 따라 대가가 나오는 거죠.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로, 부메랑 인생입니다. 악한 것을 던지면 악이 오고, 선한 것을 던지면 선이 돌아오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악을 던지면서 선이 돌아오길 바라죠... 오는 것에 따라 지불하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손을 내밀라는 겁니다. 죽기 전에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렇게 떳떳하게 살았노라, 두 손 번-쩍 들고 외칠 수 있는 삶,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돈은 돌고 도는 거고, 잘 나간다 해도 삼대를 못 가는 게 기업이에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김영훈 씨는 두 딸에게, 그 자손들에게도 재산이 아니라 이름을 남기고 싶다. “나 하나 밥 먹고, 잘 살고 가는 인생”을 원하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돈을 모아 고아와 미혼 자녀를 위한 재단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는데, 먼 훗날 부부의 제삿날에는 재단의 아이들이 모여 파티를 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날엔 두 딸도 파티에 참석해, 떳떳하게 살다 떠난 엄마와 아빠를 기억할 것이다.

흙지키미 박인철, 일리드 님
“저는 한국에서 일해요. 먼저, 돈 벌고, 저축하기. 
나중에, 베트남 가요. 집이 잘 살고, 결혼할 거예요.”


  일손을 멈추고 논에서 나온 농부들과 컨테이너 식당 바닥에 둘러앉아 흥겹게 얘기 나누며 싱싱한 먹거리들로 점심을 먹었다. 두 청년이 트랙터 옆에 서서 식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원래 고흥에서 공사 장비 일을 하다가, 그쪽은 안 맞아서 완전히 은퇴를 해버렸지요.” 

  올해 초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 농장으로 오게 된 장발머리 박인철 형은 야생화나 연꽃을 기르는 것이 꿈이다. 여기서 농사일을 하면서도 휴일이나 시간이 날 때면, “꽃을 기르는 좋은 아이디어”에 관해 노트를 하곤 한다. 크지는 않아도 꽃을 전문적으로 기를 수 있고, 사람들이 와서 구경할 수 있는 식물원을 만들고 싶다. 세상에, 꽃을 좋아하고 꽃을 기르며 사는 게 꿈이라니,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이렇게도 다양하다


  ‘나락자랑’이라고 쓰인 모자를 쓴, 베트남에서 온 스물일곱 살 이주노동자 청년 드(De)가 만경에 온 건은 한 달 전이다. 


  “저는 한국에서 일해요. 먼저, 돈 벌고, 저축하기. 나중에, 베트남 가요. 집이 잘 살고, 나중에 결혼했어요(할 거예요).” 


  또박또박 정확한 몇 개의 한국어 단어들로 자신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사무실과 식당과 마찬가지로 인철 형과 드가 숙소로 쓰는 건물도 컨테이너 박스다. 작은 장롱과 이불가지와 간소한 짐들 몇 개가 두 사람의 세간 전부였다. 며칠 전 휴대폰을 개통해 아직 배터리 충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드에게 인철 형이 느린 말투로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꺼진 전화기가 충전되어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과, 또 같이 한국에 이주노동을 온 친구들과 어서 연락이 닿기를 기대하며, 드는 컨테이너 창밖으로 담뱃재를 털었다. 


  벗어두었던 긴 작업 장화를 다시 신고, 김제, 만경, 금만평야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논길을 성큼성큼 걸어, 두 청년은 일터로 돌아갔다.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담는 필자는 한 명의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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