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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05. 2018

달동네 형제들

전북 군산시 월명동 두 형제 이야기 

  “인생은 꽃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꽃이 피면 예쁘잖아요. 
근데 또 져 버리고, 그러는 것처럼, 인생도 피었다 지고...”  

  며칠을 제대로 안 씻은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좀 씻고 따뜻하게 자자는 생각으로 월명공원을 내려와 찜질방을 찾아가는 밤길이었다. 멀리서 훤칠한 청년 두 명이 마주 걸어오다 ‘동네 일진’의 느낌으로 처음 듣는 이름을 외치며 나를 불러 세웠다. 얼굴을 코앞에서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자신이 아는 동네 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라서 미안해했지만, 나는 열 살이나 나를 어리게 봤다는 게 기분 나쁘지 않았고, 갑작스런 만남이 오히려 반가웠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스무 살 선수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제 소개요? 아... 나 어디 다닌다고 하지? 어디 팔아먹지? 현대중공업? 삼성? 한화? LG? 음, 저는요, 지금 레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청소년 지도 쪽으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는데, 사회복지사가 되려면 대학을 나와야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실력으로는 바로 대학에 가기가 어려워서, 내년에 일단 군대를 가서 제대한 후에 준비를 해서 대학에 가려고 해요.” 


  “아버지가 시공 일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열여덟 살 방학 때 시공 일 따라다니면서 도와 드리고 첫 월급을 받았던 게 여태까지 살면서 제일 기뻤던 일이에요. 슬펐던 일은 없구요. 죽을 뻔했던 적은 있어요. 아는 선배들이랑 선배 여자친구들이랑 여름에 계곡에 놀러갔는데요. 그때 한 선배 여자친구가 귀걸이를 물에 빠트렸어요. 그 귀걸이 찾으려고 잠수했다가 죽을 뻔했어요. 선배들이 건져 줘서 살았는데 진짜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아요.”


  선수의 동생 경순이는 고창 영성고등학교 2학년이다. 체육 선생이 되고 싶어서 전북 사범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데 공부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저희 학교가요, 각 지역에서 모인 학생들이 많은 학교거든요. 군산 애들이 아닌 애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어떤 애가 어떤 앤지 모르니까 학기 초반에는 기 싸움이 심하죠. 처음에는 지역별로 따로 몰려 다니다가 나중에 친해지고 나면 다 같이 놀고 그래요.” 

  “내 것이 아니면 손대지 말라. 그게 저희 집 가훈이에요.” 

  선수는 이 문장을 평소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동생 경순이는 “인생은 꽃이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인생은 꽃이다. 인생은 꽃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꽃이 피면 예쁘잖아요. 근데 또 져 버리고, 그러는 것처럼, 인생도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고,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것 같아요.”  


  선수와 경순이는 월명동 달동네의 유명한 귀신이 출몰하는 장소도 알려주고, 보물이라며 퇴계 이황 선생 얼굴을 곱게 화장한 천원 짜리 지폐도 꺼내어 보여 주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두 살 터울의 의좋은 형제가, 오늘도 오래된 가로등이 비춰주는 높다란 골목길을 걸어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담는 필자는 한 명의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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