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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04. 2018

잔나비띠 동생과 6학년 3반 언니들

봄꽃놀이 세 친구 이야기 

이렇게 서로 다른 장점을 지닌 사람들이 어울렸기 때문에, 
독자적으로는 낼 수 없는 멋이 나오는 거죠.

  모처럼 봄 소풍을 나와 꽃보다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여고생처럼 들뜬 웃음소리가 행복의 느낌을 터뜨렸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활기는 나이가 들어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세 명이 나란히 선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956년생 육희 아주머니는 “숫자 50, 영어로 Fifty” 라는 이름의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들에게 정성껏 맛있는 커피와 음식과 쉼을 제공하고, 서로 얘기도 나누는 공간이에요. ‘50’ 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희년(禧年)’에서 따온 숫자예요. 50년 마다 오는 희년은 빚도 탕감해주고, 노예도 해방시키고, 잃었던 토지도 찾아주는 기쁨의 해인데, 제가 희년교회를 다님으로써 그 뜻을 알고 가게 이름을 그렇게 붙였더니 사람들이 재미있어 합니다.” 

 

 “저는 6학년 3반이에요. 63살...” 

  육성숙 아주머니는, 친동생 육희 아주머니에 따르면 “자칭 공주”란다. 다섯 자매 중의 큰 언니로 자라났고,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했다. 

  “아들이 둘 있는데 다 장가 보내고, 얼마 전에 둘째 아들이 손녀딸 낳았고, 그래요...” 

  목소리가 무척 작고 나긋한 맏언니의 이야기를 동생이 옆에서 거들었다. 


  “매력적인 가수 인순이! 다이아몬드 값으로 환산하면 6.3카렛!” 

  이렇게 이인순 아주머니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다. 

  “6.3캐럿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지나고 나니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물론 목적을 이루려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세상은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는 걸 보니까 언뜻 생각나는 게, 나도 예전에 세계적인 카메라맨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젊을 당시는, ‘사진쟁이’라고 하면 무시를 당하던 시대였어요. 더구나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다니면 이상하게 보고, 그렇게 제약이 심하던 시대였죠. 

  제가 사진 찍는 걸 가장 반대한 사람은 아버지였어요. ‘어디, 남자들 앞에서 카메라 들고 다니냐고...’ 화를 내셨지. 그러고선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판사가 되라고 그러시는 거 있지. 그러다가 나중에는 ‘여자가 판사를 하면 팔자가 사납다’면서 또 다시 의사가 되라고 그러시는 거야... 아이고. 그래서 내가 우리 아버지 덕에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결국에는 아버지의 뜻도 이루지 못하고, 내 자신의 꿈도 펼치지 못했어요. 그리고 사진쟁이도 못 되고. 

  그렇게 다 잃고, 결혼해서, 한국의 전형적인, 희생적인 어머니로 여태까지 살아왔어요. 결혼 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우리나라 남편들은요, 희생이란 걸 몰라요...” 


  이인순 아주머니의 열정적인 말투에서 젊은 시절의 꿈과 사라져 버린 꿈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지금은 정년퇴직한 남편이랑 귀농을 준비하고 있어요. 시골에 처음 살아서, 땅의 돌멩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는데, 얼마 전부터 사과가 많이 나는 장수군 천천면에서 개간할 땅을 고르고 있어요.”          


  “이분은 운전을 너무 잘하세요. 또 이분은 원채 살림꾼에, 아주 전통적인 멋을 가진 여인상이고, 저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취욕이 있고 활동적이거든요. 이렇게 서로 다른 장점을 지닌 사람들이 어울렸기 때문에, 독자적으로는 낼 수 없는 멋이 나오는 거죠.” 

  이인순 아주머니가 이번 봄 소풍 멤버들의 각각의 특색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정리해 주었다. 


  “여럿이 어울리면서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함께할 수 있는 게, 제일 행복하고, 또 어려움이 생길 때 같이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는 일인걸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느끼게 됐어요.” 

  육희 어머니는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셨다. 


  군산 앞바다에 서서히 노을이 내리고, 잔나비띠 동생과 6학년 3반 언니들, 반짝반짝 빛나는 세 친구는, 봄꽃 내음을 품은 채 전주로 돌아간다.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담는 필자는 한 명의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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