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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13. 2018

김제에서 만난 공무원 이야기

이제 남은 건 결혼

“신상에 큰 변화가 없는 한은 
앞으로 정년까지 쭉, 이 일을 하겠지요.”


金堤 김제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로서, 50여 개의 부족국가 중 가장 방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벽비리국(辟卑離國)과 구사조단국(臼斯鳥旦國)이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백제가 마한을 병합한 뒤 벽골군(碧骨郡)으로 바뀌었고, 신라 때 김제군이 되었다. 


  아침의 진봉면, 한낮의 광활면, 저녁의 죽산면과 밤의 부량면, ‘징게맹경 외애밋들(김제만경 너른 평야)’을 종일 걸었다. 백제 때 지은 저수지라는 벽골제(碧骨堤) 옆 신용교회 이층의 교육실에서 부활절 달걀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나와 아리랑문학관을 구경하고, 정읍 방향의 찻길에 서서 달리는 차들을 향해 태워달라며 손을 흔들었다. 수십 대의 차들이 쌩쌩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스쳐지나가고, 에휴, 그냥 걸어가야지 싶었을 때, 맑은 아침의 행운인지 차가 한 대 멈춰 섰다. 


  사건사고가 난무하는 이 무서운 세상에서 길가의 낯선 청년을 차에 태워준 사람은 김제시 신풍동에서 환경, 보건, 체육, 청소년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 김대철 씨였다. 정읍에 사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기 위해 양복을 차려입고 서둘러 가는 길이었다.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결혼식 사회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스피커에서는 나도 좋아하는 ‘브라운 아이즈’의 발라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릴 때 되고 싶었던 직업은 공무원이 아니었다. 전남 광주의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후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됐다. 


  “신상에 큰 변화가 없는 한은 앞으로 정년까지 쭉, 이 일을 하겠지요. 월급은 뭐 아직... 주변에 있는 영업맨 친구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대신 다른 어떤 직업보다 안정성이 높은 일이니까요.”     


  일생의 직업과 생계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해결이 났으니 “남은 건 결혼”이고, 몇 번 선을 봤는데, 선은 “다른 것보다 상대의 조건을 보게 되니까” 연애와 달리 부자연스럽다. “양가 부모님들끼리 결혼을 한다고 할 정도”로 결혼할 두 사람의 마음 이외의 요소들이 중요하다. 


  “젊을 때 다들 한 번씩은 연애를 하잖아요. 그때 서로 좋아하는 관계를 잘 유지해서 결혼까지 가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돌아보면 그때가 아쉬워요. 어쨌든 곧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가족을 꾸리고 싶어요. 크게 잘 살지는 못해도 애들이 너무 힘은 안 들게 그렇게 살고 싶네요.”


  점점 더 고용과 생계가 불안해지는 시대를 반영하듯,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이 1등 신부, 신랑감이라 불리며 각광 받은지도 오래되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도서관에 앉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은 일상이 되었다. 김대철 씨도 몇 년 동안의 고민과 준비를 거쳐 원하던 공무원이 되었을 것이다. 


  직업도 생계도 불안정하며 안정을 위한 준비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남은 건 결혼’이라고 말하는 김대철 씨의 안정감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 나는, 활기차게 나의 길을 갈 열정은 있으나, 생계를 위한 별다른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결혼할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신은 날아다니는 새들도 먹이신다’던데 과연 그럴까. ‘우야든동’ 내 앞에 주어진 길을 하나, 둘, 걸어가야지, 생각하며 정읍 읍내를 걷는다.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담는 필자는 한 명의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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