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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26. 2018

두근두근 중간고사

"프로게이머가 꿈이었는데, 크다 보니까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돈도 벌고, 좋아하는 게임도 마음껏 할 수 있는 프로게이머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크다 보니까 점점 그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장산(內藏山)에는 연둣빛 봄기운이 완연했다. 서래봉에서 마주친 부산 사투리를 쓰는 비구니 스님은 다가오는 초파일 부침개에 얹을 진달래꽃을 찾아 산을 헤매고 있었다. 불출봉 능선을 걷는데 날이 저물어와 서둘러 내리막길로 향했다. 해가 서쪽으로 보이는 신선봉과 까치봉을 넘어갔다. 찬란히 반짝대던 나뭇잎들과 노래하듯 흐르던 계곡물이 차분히 저녁을 맞아들였다. 그 많던 차들과 등산객들이 다 산을 빠져나갔을 때쯤 내장사에 도착했다. 공양 후 예불을 알리는 은은하고 깊은 범종 소리를 연못 속의 잉어들도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조용하고 예스러운 정읍 시내에서 호남고등학교 3학년 학생 인섭이를 만났다. 내일 있을 중간고사를 위해 독서실에 공부하러 가는 길이었다. 서천 장벌부락 중학생 새영이도 “내일이 시험”이라고 했었는데, 만나는 학생들마다 시험이라니 ‘내가 중간고사와 함께 남하(南下)하고 있는 건가?’ 하며 실없이 웃었다. 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노래했던 <교실이데아>의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애써 치르며, 정기적으로 학력을 검사 받으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음, 자신 있는 과목은 없고요, 수학이 너무 걱정이 돼요.” 

  대답하는 인섭이는 어렸을 때 컴퓨터 게임, 그 중에서도 <메이플 스토리>라는 온라인 게임을 너무 좋아했다. 

  “돈도 벌고, 좋아하는 게임도 마음껏 할 수 있는 프로게이머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크다 보니까 점점 그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포기했고요. 그래도 제가 게임을 좋아하면서 컴퓨터를 많이 했으니까, 그 경험을 살려서 컴퓨터 그래픽 관련 학과에 진학할 계획이에요. 요즘에는 게임은 거의 안하고, 대학입시공부에 전념하고 있죠. 고3이잖아요.” 

 

 인섭이는 어릴 때 가족을 따라 부산에서 정읍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 당시에는 제가 어려서 왜 내려왔는지 몰랐죠. 근데 배우다 보니까, 아마 IMF가 터지고 힘들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정읍으로 내려온 거 같아요.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형이랑 동생이 같이 살고 있고요, 아빠는 좀 멀리, 돌아다니시면서 일하고 계세요.”  

  “그냥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좀 밝게,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시원시원 서글서글한 소년 인섭이는 나중에 연락할 수 있게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고는, 함박 웃음을 지어 인사를 하고 독서실로 뛰어 들어가서 내일을 위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정읍 서쪽의 변산반도와 남쪽의 장성과 광주는 전에 몇 번 가 보았던 곳이라 뛰어넘고, 호남선 종착역 목포로 향하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井邑

백제 때는 정촌(井村)이라 불리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정읍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땅을 한 자만 파도 물을 길어올릴 수 있을 만큼 지하수가 넉넉하기 때문에 고을 이름에 우물 정자가 들어갔다고 한다.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담는 필자는 한 명의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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