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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17. 2018

우슈토베, 고려인들의 최초 정착지

"아픔을 딛고, 새로운 삶으로"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지요"


1937년 북국의 겨울은 유난히 차가웠다.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은 '강철 인간'이라는 뜻으로 레닌이 붙여준 별명)의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 각지로 강제 이주 당한 연해주 고려인 17만여 명 중 많은 이들이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 우슈토베의 바슈토베 언덕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추운 곳이다 ⓒ 유최늘샘


강제 이주 열차가 처음 정차한 우슈토베(Үштөбе) 역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바슈토베(Бастобе)는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고려인들이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슈토베까지의 겨리는 7,166 킬로미터에 이른다.
'우슈토베'는 카자흐말로 '세 개의 언덕', '바슈토베'는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현재 이곳은 카자흐스탄에 속한 땅이다.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이라고 불릴 정도로 추운 지역이다. 

고려인의 역사를 직접 만나기 위해 중앙앙시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근교에서는 소비에트 연방 시기 가장 성공적인 콜호즈(kolkhoz. 소비에트 연방 시기 만들어진 집단농장) 중 하나로 알려진 북극성 콜호즈를 형성한 고려인들의 역사를 만났다. 고려인 3세, 4세들은 이제 조선말을 거의 알지 못했지만 여전히 '고려국시'와 김치를 즐겨 먹었다.      

▲ 북극성 콜호즈 김병화 박물관의 초상화 고려인 김병화(1905∼1974), 북극성 콜호즈의 지도자였다. ⓒ 유최늘샘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 알마티에서는 오랜 역사를 만들어 온 '고려극장'과 '고려신문사'를 방문했다, 중앙앙시아 각지에 이주 당한 고려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교육, 언론, 문화였다. 고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어디에든 학교와 신문사와 극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정책에 의해 소수민족 언어와 문화가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고려말을 가르치는 학교는 점차 줄어들었고, 따라서 고려말을 쓰는 고려인들도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고려인의 문화를 끝내 지속시키기 위해 고려신문사는 여전히 고려말로 신문을 발간하고 있다.

▲ 고려일보 러시아어판 러시아어판과 한국어판이 동시에 발간되고 있다 ⓒ 유최늘샘


고려일보는 1938년 크질오르다에서 <레닌 기치>라는 이름으로 창간하여 1978년 알마티로 이전했고,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1991년부터 <고려일보>라는 명칭으로 발간되어 왔다. 한글판 1부와 러시아판 1부를 합쳐 주 1회 발행하고 있다.

고려극장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되어 1937년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과 함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옮겨왔고 1966년 당시 수도인 알마티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전히 고려말로 공연하고 있고, 러시아어 통역을 함께한다.       

▲ 고려극장 고려극장에서의 음악 공연 ⓒ 유최늘샘


마침 기간이 잘 맞아서 알마티를 대표하는 고리끼 공원에서 열린 '해방절'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고려인들은 8월 15일 광복절을 해방절이라고 부른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여러 민족들이 함께 전체주의 전쟁과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고 서로의 다양한 문화를 나누는 축제였다. 부채춤 공연이 가장 인기였고, 어린이들과 청년들은 제기차기, 팽이치기 같은 놀이를 하느라 열심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고려인들은 그렇게 여전히 고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 알마티 해방절 행사 고리끼 공원에서의 고려인 해방절 행사 ⓒ 유최늘샘

▲ 알마티 해방절 행사 고리끼 공원 해방절 행사 ⓒ 유최늘샘


중앙아시아 여행의 마지막 장소가 바로 강제 이주 고려인들의 최초 정착지인 우슈토베였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부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북극성 콜호즈까지 기구하게 이어진 고려인들의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온 여정의 마지막 장소였다.

바슈토베 벌판 고려인 공동묘지 언덕에는 쉴 새 없이 세찬 바람이 불었다. 우슈토베, 바슈토베의 황량한 벌판에는 슬프고 기구한 고려인 강제 이주의 역사와, 그럼에도 끝내 이어지는 민족과 인간의 삶의 흔적이 흐르고 있다.

▲ 우슈토베 공동묘지 고려인들의 최초 정착지 우슈토베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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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슈토베 바슈토베


                                 늘샘


우슈토베, 세 개의 언덕 

바람이 온몸을 흔드네 

끝없는 벌판 너머로 

해는 저물어 가고  


갈대들의 북방한계선

동토를 일구던 고려인 농부들

북녘에선 거대한 

겨울이 내려왔지   


원동(遠東) 은 수만 리 길 

돌아가진 못하리

고향 땅은 수만 리 길

돌아가진 못하리  


바슈토베, 커다란 언덕 

바람이 온 땅을 흔드네 

머나먼 톈산산맥 줄기를 따라 

강물은 흘러오고 


솔개들의 북방한계선

물을 길던 배고픈 아이들

북녘에선 다시 

겨울이 내려왔지 


잊어버린 공동묘지 

꽃잎은 시들고 

얼어붙은 영혼들 

별빛도 시들고  


고향 땅은 수만 리 길 

돌아가진 못하리

고향 땅은 수만 리 길

돌아가진 않으리 



* 1937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여 명이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Үштөбе) 역에서7킬로미터 떨어진 바슈토베(Бастобе) 는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다. '우슈토베'는 카자흐말로'세 개의 언덕', '바슈토베'는'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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