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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Apr 15. 2018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야기

"슬픔과 꿈이 흐르는 땅"

"언젠가 통일이 돼서, 한반도에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지나서 로마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모습 정차 중인 열차와 쉬고 있는 승객들 ⓒ유최늘샘

한반도 남쪽 바다 통영의 한 가족이 북방의 시베리아에 발을 디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9 킬로미터. 무려 지구 둘레의 4분의 1을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떠난 20일 동안의 여행이었다. (횡단열차의 길이는 9,288 킬로미터라는 표기와 9,289킬로미터라는 표기가 병행되고 있는데, 이 기사에서는 여행 서적 <론리 플래닛>의 안내에 따라 9,289 킬로미터라는 표기를 따랐다.)

네 식구는 먼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 낯선 지명 '블라디 보스토크(Vladi vostok)'는 '동방 정복'이라는 뜻의 러시아말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정복하고 누가 정복 당했는가.

1,700만 제곱킬로미터, 세계 최대 크기의 국가 러시아의 역사는 침략과 전쟁, 정복의 역사로 가득했다. 연해주, 사할린, 아무르강 유역, 캄차카 반도, 거대한 시베리아의 곳곳에 살아오던 다양한 민족들은 산업혁명의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제국주의 국가 러시아의 폭력에 의해 죽고, 쫓겨났다.
1917년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은 봉건 차르 체제 러시아를 뒤엎고 만국 노동자∙농민의 평등과 단결을 지향하는 소비에트 연방을 만들었지만, 1920년대 후반 권력을 잡은 스탈린의 독재 정권은 수많은 소수민족을 강제 이주시키며 핍박하기도 했다.

플라츠카르트 내부 60여 개의 칸이 한 차량을 이루고 칸막이가 없다 ⓒ유최늘샘

시베리아 횡단열차 삼등실, 일명 '플라츠카르트(Platskart)' 복도, 커다란 러시아 전통 주전자 사모바르(samovar)에는 24시간 언제나 뜨거운 물이 끓고 있다. 장거리 기차를 타기 전 슈퍼마켓에서 산 인스턴트 감자죽과 컵라면에 물을 붓고 식빵과 과일조림을 보태면 모자람 없는 삼등실에서의 한 끼가 된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컵라면 브랜드는 대한민국의 'D' 컵라면이다.

멈춰 서는 역 플랫폼마다 그 지역에 사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훈제 생선이나 손수 만든 만두와 빵, 아이스크림 따위의 요기 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여승무원 프로보드니짜나 남승무원 프로보드니크가 객차를 하나씩 담당하며 청소와 관리를 도맡는다. 승객 한 명 한 명이 내릴 곳을 알려주는데, 외국인 여행자에 대해서는 더욱 관심을 기울이므로 차내 안내방송이 전혀 없이도 내릴 곳을 놓칠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정차역에서 파는 음식들 중에는 훈제 생선과 빵이 많다 ⓒ유최늘샘

인구 5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세계에서 가장 춥다는 하바롭스크,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 길이 636km의 호수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바이칼 호수에 떠 있는 샤먼들의 성지 올혼 섬,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동서 시베리아의 경계 예니세이 강, 소련 시대 굴라크(Gulag, 수용소)로 향하던 죄수들의 환승역 타이셰트, 광업도시 노보시비르스크,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우랄 산맥에 자리한 예카테린부르크를 지나, 수도 모스크바(Москва)까지, 9,289 킬로미터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 대망의 막을 내렸다.

모스크바의 크렘린과 붉은 광장, 바실리 성당은 소문에서 듣던 대로 웅장했다. 푸시킨과 차이콥스키, 도스도옙스키의 도시, 소비에트 시절 '레닌그라드(Leningrad)'로 불리던 상트 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에는 유럽 고도(古都) 특유의 화려함이 넘실거렸다.
황량하고 고요한 시베리아를 침략하고 철도를 건설한 권력의 중심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와 아시아 각지를 침략해 부를 쌓은 다른 유럽 강대국들처럼,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차지했다.

모스크바 성바실리성당 러시아의 대표적 건축물 ⓒ 유최늘샘

횡단열차 서쪽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찬란한 번영 아래에는, 횡단열차 동쪽 거대한 시베리아 동토의 아픈 역사가 쌓여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건설은 1857년 재정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철도 칙령 발표로 시작되었다. 이어 1891년 알렉산드르 3세는 우랄 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철도 건설을 공식 선언하고 기공식을 개최했다.

오랜 과거부터 시베리아 각지에 살던 부랴트족(族), 네네츠족 등 수많은 유목민들은 백계 러시아인들의 동방 진출에 의해 점점 밀려나고 쫓겨나게 됐다. 블라디보스토크, 동방 정복. 왜 정복하고 누가 희생당했는가. 정복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지 말라.
그들은 기념비를 세우며 정복을 자축했지만,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밀려난 사람들의 슬픔이 흐르고 있다.   

슬픔의 역사, 전체주의와 전쟁, 분쟁과 분단으로 인해 가지 못하는 길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바람을 다시 한 번 되뇌이게 하는 20일 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언젠가 마침내 통일의 날이 오면, 부산에서, 목포에서, 서울에서, 평양에서, 한반도의 어디에서든 기차를 타고 육로로 유라시아를 건너 유럽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머지 않기를 바란다.


바이칼 호수 올혼섬에 남아 있는 샤먼의 성지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기원했을까 ⓒ유최늘샘


#시베리아 #시베리아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토크 #바이칼 #샤먼 #올혼 #제국주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작사 작곡 늘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9킬로미터

지구 둘레의 4분의 1이라네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실 플라츠카르트라도  

아무 상관없다네  

쯔드라스뜨 부이쩨, 다 스비다냐

우린 인사를 건네며


하바롭스크 지나  

울란우데를 지나  

바이칼 호수를 건너  

동쪽으로


이르쿠츠크 지나  

노보시비르시크 지나  

우랄 우랄 산맥을 너머

서쪽으로


북쪽 나라 얼음 나라  

시베리아 횡단열차 달리네

시베리아 횡단열차  

슬픔을 싣고 달리네


1857년 크렘린의 짜르가  

건설을 명령했다지

브리야트 사람들 네네츠 유목민들  

멀리 멀리 쫓겨나 버리고  


1937년 소비에트 스탈린이

강제 이주를 명령했다네  

연해주 고려인들 나라 잃은 집시들은

멀리 멀리 끌려가 버리고


시베리아 얼음 나라  

유목민과 사슴들의 땅  

시베리아 고요한 나라  

자작나무 요정들의 땅


북쪽 나라 얼음 나라  

시베리아 횡단열차 달리네

시베리아 횡단열차  

슬픔을 싣고 달리네


*노래 소개 - https://youtu.be/y3W5PRJT7Yc

시베리아 횡단열차 MV - 늘샘

*통영가족의 시베리아 횡단기 영상 소개 - https://youtu.be/hw1hU06rU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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