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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May 20. 2018

기타 치는 경찰관, 랩 하는 요리사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친구들

"살면서 재미없으면 살기 힘들잖아요?! 
웬만한 건 다 재미있죠."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삼광중학교 구성환 선승우


  촉촉이 봄비가 내렸다. 논에는 파릇파릇 연둣빛 보리가 하늘거리고 갯벌 너머 얕은 바다 위로 거룻배들이 떠다녔다. 해창리, 사촌리, 수문리를 걸어, 밤이 되어서야 보성군에 닿았다. 전일리 마을회관에서 몸을 쉬이고 나왔을 땐 비가 멎어 있었다. 마을 어귀마다 자리한 오래된 정자나무들도 먹이를 찾아 나선 어린 달팽이들도, 조심스레 새벽안개를 걷어내는 햇살을 맞이했다. 관광지로 개발된 녹차밭을 지나 보성시장 골목에서 아침 겸 점심 끼니를 때우고 오후에는 벌교읍에 닿았다.


  “장좌리에 위치한 사립 삼광중학교” 3학년인 성환이와 승우는 방과 후 두 개의 다리를 건너 집에 가는 길이었다. 선입감이겠지만 뿔테 안경을 쓰고 통통한 성환이에게서는 모범생의 느낌이 났고, 머리를 빡빡 민 깡마른 몸집의 승우에게서는 반항의 향기가 느껴졌다. 똑같은 교복을 입었지만 스타일이 많이 달라 보이는 두 친구가 참 어울린다. 집에 가서 몇 시간 쉬고는 또 학원에 간다고 한다. 삼광중학교는 각 반의 학생이 스무 명에서 스물다섯 명 정도이고, 학원에서는 열두 명의 중3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경찰관이 되고 싶은 성환이는 밴드부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는데, 최근에는 ‘부활’의 <사랑해서 사랑해서>, ‘강승윤’의 <본능적으로> 같은 발라드 노래를 합주하고 있다. 

  “학생이니까 아무래도 공부가 힘들고, 다른 건 뭐, 다 재미있어요. 살면서 재미없으면 살기 힘들잖아요?! 웬만한 건 다 재미있죠. 좋았던 때도, 시험 점수가 잘 나왔을 때가 제일 좋아요.”   


  승우는 “랩노래”를 부르는 게 취미이다. 요즘에는 ‘다이나믹 듀오’ 앨범에 꽂혀 있다길래 한 곡을 불러 달라고 졸랐다. 빡빡머리 중학생 래퍼 승우의 날카로운 랩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열 평 남짓한 방에 월세로 혼자 사는 그는 / 고달픈 직장생활 때문에 눈 밑에는 짙은 그늘 / 사랑도 깊게 못해 / 숱하게 상처 준 여자들 때문에 B형 남자라는 오명을 씻지 못해” 로 시작하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노래였다. 장래희망은 래퍼가 아니라 요리사인데, 곡성에 있는 조리고등학교로 진학해볼 생각도 해보지만, “왠지 어려울 거 같아서” 다른 직업도 생각해보려고 한다.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몇 년 전의 생활이 그동안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이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하고 묻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둘이 동시에 “가족!” “부모님!”이라고 대답한다. 먼 훗날 다시 벌교에 왔을 때, 기타를 치는 경찰관이 된 성환이와 랩 하는 요리사가 된 승우를 만날 수 있을까? 다른 듯 어울리는 두 친구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筏橋

별교라는 지명은 뗏목을 엮어 만든 다리를 뜻한다. 오랫동안 낙안군(樂安郡)에 속했으며 1908년 보성군에 편입되었다. 작은 포구였던 벌교는 일제시대에 보성과 고흥 일대의 물산을 실어내 가는 창구가 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1930년에 전라남도 송정리와 경상남도 삼랑진을 잇는 경전선이 이곳을 지나가면서 벌교역이 생겼다. 보성면이 읍이 된 것보다 4년 빠른 1937년에 읍으로 승격했다. 이 무렵부터 생긴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유동 인구가 많은 상업도시 벌교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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