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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May 20. 2018

물결 위의 인생

전남 여수에서 만난 어부의 이야기 

“평생 선박 생활만 했지, 선박 생활만...”
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 흥복호 어부 홍주안

  여수 앞바다 청록색 물결이 잔잔히 일고, 여객선터미널과 수산물 시장이 있는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오순도순 떠있었다. 어부들의 정수리와 어깨 위로 내리쬐는 햇볕이 나른했지만 배와 그물을 손질하는 움직임은 분주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배들을 매어 놓는 뗏목에 올랐다. 오래도록 육지에만 있던 몸이 바다 위에 오니 작은 파도에도 휘청거리며 멀미가 난다. 


  여수 어부 홍주안 할아버지는 “뗏마”라고 부르는 작은 배에서 망가진 낚싯줄을 “단도리”하고 있었다. 바다 빛깔을 닮은 파란색 뗏마의 이름은 ‘흥복호’. 오랜 세월 선원 생활을 거쳐 정년퇴직을 하고, “놀면 뭐할 건가?” 싶은 마음으로 “요거, 뗏마를 하나 사서” 앞바다에 낚시를 다닌다. 

  “퇴직했다고 집에만 들어앉아 있고, 술만 마시면 건강 다 해치지... 이렇게라도 계속 움직이는 게 나아. 그건 뭐 나이 들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여.” 


  “평생 선박 생활만 했지, 선박 생활만...” 

  여수에서 나고 자란 아저씨는 천생 바닷사람으로 살아왔다. “매일 열두세 시간씩 주야로” 목포와 여수를 오가며 모래를 실어 나르는 화물선을 타던 때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일고여덟 명이 타는 배였는데, 파도가 치고, 바람이 세게 불믄, 하늘만 쳐다보고 가는 거야, 하늘만 쳐다보고...” 죽을 둥 살 둥 포구를 찾아 항해하던 날들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여객선 선장도 오래 하고... 선장이라고 해도 회사에 고용된 월급쟁인께,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 한 달에 한 뭐 돈 백씩 벌었지.”         

  삼남매를 키웠는데 작은아들은 죽고, 큰아들은 객지에 나가 있고, 딸은 여수 시내에 살고 있다. 내일은 날씨가 좋으면 좀 넓은 바다까지 나가 보려 한다. 


  “요새는 도다리, 하고 노래미 주로 낚아. 예전에 비하면 고기 잡히는 게 많이 줄었지. 잡아서 팔 정도는 안 되고 반찬이나 낚아 먹을 정도지 뭐.” 


  떠가지 않게 배를 매어둔 튼튼한 밧줄을 다시 확인한 뒤, 항구의 높다란 사다리를 타고 할아버지는 뭍으로 올라간다. 다른 배의 어부들도 하나둘 일손을 멈추고 바다를 나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이나 집을 향해 걸어간다. 마치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는 듯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등대에,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을 일렁이는 바다가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다. 



麗水

여수는 물이 아름다운 고을을 뜻한다. 여수라는 지명은『삼국사기지리지』에 "해읍현(海邑縣)은 본래 백제 원촌현(猿村縣)이었으나,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고려의 여수현이다." 라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북쪽의 순천과 연결된 반도로 동쪽으로는 광양만을 사이에 두고 경상남도 남해군과, 서쪽으로는 여자만을 사이에 두고 고흥군과 마주한다. 돌산도를 비롯한 여러 도서가 분포하며 해안선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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