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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최늘샘 May 20. 2018

섬마을 아기와 부부

경남 통영시 욕지섬에서 만난 가족 이야기 

“도시에 살 때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섬에 사니까 이웃끼리 정이 많이 생겨서 좋아요.“ 

아기 임소윤 원량초등학교 방과후 교사 문혜진 욕지중학교 통학선 선장 임채록


  고향 통영 땅에 5월이 왔다. 머나먼 중국의 사막에서 바람을 타고 왔다는 황사가 심해 며칠째 온 세상이 뿌옜고 소나무들도 지천으로 노란 꽃가루를 터뜨렸다. 이윽고 봄비가 내려 먼지와 송홧가루를 씻어주었다. 산에는 온갖 잎과 꽃들이 피어난다. 통영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욕지섬에 들어간다. 어릴 적에 부모님을 따라 가본 적이 있다는데,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불과 한 시간 반의 거리지만 육상동물인 나에게 바닷길은 땅길보다 멀게 느껴졌다. 트럭의 물탱크 속에 갇혀서 먼 도시로 팔려가는 생선들과 오징어들은 얼마나 땅멀미가 날까... 

  선착장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섬의 둘레를 따라 걷다가 밤을 맞았다. 캄캄해진 바다와 하늘이 작은 섬을 에워쌌고 어둠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 소리만이 온 세상에 가득해졌다. 섬의 남쪽 끝, 모녀가 기도를 하며 돌을 갈아서 짓고 있는 ‘새 에덴동산’에서 밤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전국에서 일조량이 최고라는 욕지섬, 선명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천황산에 올랐다가 항구가 있는 면 소재지로 내려간다. 섬에는 자동차가 적어서 걷기에 편하고 공기가 너무 좋다. 마주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어디에서나 눈을 돌리면 망망대해가 보여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욕지중학교 정문 옆의 사택에는 진주에서 온 부부와, 세상에 나온 지 16개월째인 세 살배기 아기가 살고 있다. 통영교육청에 소속되어 있는 임채록 씨가 올해 3월부터 2년 동안 욕지중학교 “통학선 선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가족이 함께 섬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딱 석 달째다. 나는 ‘통학선(通學船)’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서 몇 번 다시 듣고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딸 소윤이가 너무 어리지만 않으면 아빠 혼자 들어왔을 텐데, “아기는 부모의 애정을 먹고 산다”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섬에서 살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에 배가 네다섯 번 밖에 다니지 않고 육지로 나가는 배는 오후 네 시 반이면 끊겨서 “경조사 같은 일에 참석하기가” 어려운 게 섬 생활의 단점 중 하나다. “그리고 문화시설이라고 해봐야 도서관 하나가 다고, 또 어데 가봐야, 요 섬 안이라서, 좀 답답하기도 하죠.”


  “무엇보다 섬에서는 애기 키우기가 힘들다고들 얘기해요. 기상이 안 좋을 때는 배가 안 뜨는 경우도 있고, 섬에 하나 있는 보건소도 주말에는 쉬니까, 아기가 아플 경우가 제일 염려스럽고요... 또 섬에 있는 가게들에는 기저귀나 분유도 들어오는 것만 계속 들어오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적어요. 그래서 주말마다 시내 나가면 마트에서 한꺼번에 장을 봐서 오죠.” 

  하지만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이라 좋은 점도 많다. 두어 평 정도의 작은 텃밭에는 아기의 이유식을 위해 청경채와 비타민 식물, 쑥갓, 상추, 오이, 토마토를 기르고 있다. 


  “도시에 살 때는 각박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외로운 분위기 속에서 살았는데, 섬에서 사니까 아무래도 이웃끼리 정이 많이 생겨서, 그런 것도 좋아요.” 

  통학선은 욕지도 주변의 중학교가 없는 섬들에 사는 학생들이 욕지중학교로 등하교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운항하는 배다. “연화도에서 한 명이 타고요, 노대도에서 두 명이 탑니다.요(여기) 욕지중학교 전교생이 서른네 명인가 밖에 안 되니까, 세 명이면 십 프로 정도 되는 기죠.”  


  문혜진 씨는 욕지 원량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돌봄 교실 교사로 일하고 있다. 방과 후에 가정에서 돌봐줄 어른이 없는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과제와 공부를 돕고,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풍선 아트 같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수업을 진행한다.  


  “20대들도 요새, 하고 싶은 거 다 몬하고 사는데...” 

  그렇게 쉽지 않은 시절이라, 채록 씨는 특별히 계획하고 바라는 일이나,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통학선 선장 생활이나 교육청 일에 있어서도 욕심낼 일이 없고, 계속 지금처럼 일을 할 생각이다. 

  “뭐, 안 짤리면 다행이지요.” 

  초등학생, 중학생이 된 자녀를 키우는 친구들에 비해서 애를 늦게 낳았는데,  “살아보니까, 가족들이 건강하게,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한 것 같고, 그게 제일 큰 바람”이다. “늘 하루하루가 애 때문에 조마조마”한 혜진 씨도 소윤이를 잘 키우고 가족이 계속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앞으로의 가장 큰 꿈이다.     

  


欲知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욕질도(褥秩島)로 기록하고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욕지도(欲知島), 『조선지도』에는 욕지(欲智)로 적고 있다. 조선 초기 고성현령이 고성현 서쪽 관음점사(觀音岾祠)에서 매년 봄과 가을마다 욕지도를 비롯한 여러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망제(望祭), 망질(望秩)이라고 하였고 이에 욕질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욕지항 가운데 거북처럼 생긴 섬이 못에서 목욕하는 형상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화엄경』의 "생(生)을 알고자(欲智) 한다."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등도 전한다. 동쪽으로 연화도, 북쪽으로 노대도와 두미도가 인접해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천황산(350m)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급경사를 이루면서 해안에 몰입하여 곳곳에 험준한 벼랑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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