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삼문동 넝마주이 이야기
“잠들면 안 춥다. 사람 체온이 있는데 뭐시 춥노?!”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 넝마주이 도창환
최우수 풀백 박재수 아저씨와 내가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곳으로 텁수룩 긴 수염 아저씨가 다가와 “내 누구 안 닮았나?” 하고 물었다. 텔레비전를 많이 안 봐서 잘 모르겠다며 궁금해 하는 내게 “얼마 전에 파키스탄에서 사살된 빈 라덴 안 닮았나?!” 라고 깜짝 놀랄 말씀을 하셨다. “예? 빈 라덴이요?” 아주 잠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왜 오바마가 죽인 오사마 빈 라덴 안 있나?” 오사마가 죽지 않고 한국으로 도망을 나왔나 싶었다. “닮아서 닮은 게 아니고, 죽을 사람이 안 죽고 살고 있은께 독하다고, 그렇게 독한께 빈 라덴 닮았다고 사람들이 그래... 근데 골격이 좀 닮았제?”
“내는 쇠나 종이 박스 그런 거 줍고 다니면서 산다. 옛날에 박통이 ‘재건대’로 명칭을 바꿨었지...”
넝마주이, 고물상 일을 하고 있는 도창환 아저씨의 고향은 “구미 위의 김천”이다. “80년대에 왔은께 밀양이 고향이나 다름없지.” 고물상과의 첫 만남을 아저씨는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출해서 떠돌다가 고물상에 갔는데, “그때는 리어카도 없고 지게만 다섯 개 딱” 있었다. 그 지게 중 하나를 메고 일을 시작했다. “옥수수 가루, 그거 고아서 만든 엿을 지고 장사를 나가서 고물로 바꿔오는데, 그 당시에는 머리카락이랑, 고무신도 받았어. 할머니들이 모아둔 머리카락을 들고 오는 거야... 지금은 고무신은 안 받아여, 고무 종류는 안 받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데 작년부터는 “부도난 명성 정형외과 건물 뒤편” 주차장 공터를 사용하고 있다. “매트 깔고 이불만 덮고” 전기가 없으니 난방기구 하나 없이 지난 겨울을 났다. “잠들기 전에는 좀 춥지, 잠들면 안 춥다. 사람 체온이 있는데 뭐시 춥노?!”
“내도 계속 고물상 일만 한 거는 아니고 직장 생활도 했었지. 밀양역 청소 칠 년, 밀양 쓰레기 칠 년, 밀양 화장실 위생 칠 년... 그런 일도 했지.”
가족들과는 연락을 끊은 지 오래 됐고 “혼자서” 살아간다.
“나는 결혼도 안했고... 연애는 했지, 물론! 인간은 나가지고 한 가지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되는데, 나는 꿈도 뜻도 없이 이것저것 초만 띄웠고, 지나고 보니까 벌로 살았어, 벌로... 내일 생각 안하고, 벌면 다 써버리고, 앞가림을 못하고 산 게 지나고 보니까 제일 아쉽다.”
“사람 인생에 몇 번의 기회가 있는데, 그 때를 잘 활용해서 열심히 하면 살기가 수월하고, 그러지 못하면 여유가 없고 비참해진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거를 알고 평소에 판단을 잘 해서 저축을 하든, 땅을 사놓든, 집을 사놓든 해 놓으면 떳떳하게 산다 아입니까? 그래야 남한테 싫은 소리 안 하고, 어깨 힘주고 산다꼬. 요즘은 돈 있는 사람이 능력 있는 거고, 전-부, 있는 사람한테 굽신굽신한다꼬. 안 그렇습디까?!”
남들보다 힘들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랄 때도 못살지 않았고, 젊을 때는 돈도 써 봤고. 객지서 고생했어도 그 대가는 다 받았어.”
지금보다 잘 살 수 있었겠지만 그 기회들을 놓친 것 같다.
“요새 좋은 건, 술 한 잔 먹을 때 좋고, 박스를 많이 주웠을 때가 적게 주웠을 때보다는 담뱃값, 술값이 생기니까 좋지.”
혼자 외로울 때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는 밀양의 넝마주이, 빈 라덴과 골격이 닮은 도창환 아저씨는, “옷만 스쳐도 인연인데, 얼굴 안다 아입니까!” 라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고, 인생에서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해나가라는 담담한 응원을 전해 주셨다.
* <남한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여행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여행은 강화에서 시작해 천안, 칠갑, 웅천, 서천, 군산, 만경, 정읍, 목포, 장흥, 벌교, 순천, 여수, 산청, 욕지, 창원, 밀양, 군위, 의성, 안동, 봉화, 태백, 정선, 강릉, 양양, 속초, 서울까지 스물일곱 군데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을 하고 글을 담는 필자는 한 명의 삼포세대 청년일 뿐입니다만,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에 응해 준 감사한 사람들의 절절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바이디,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