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군 히치하이킹 이야기
“아제처럼 이렇게 여행 다닐 수 있는 게 참 좋네요.
나는 빚을 내가꼬라도 자식한테 여행 많이 보내 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렇게 깨끗하고 텅 빈 버스정류소를 만난 것도 기적’이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보면 정류소 벤치에 누워 잠들었다 깨어난 노숙의 새벽. 나는 점점 거지의 차림새가 되어간다. 하지만 아직 독종 거지 선배들이 보면 가소로워할 수준이다. 공공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첫차와 첫손님이 올세라 서둘러 길을 나섰다.
‘민주위장 좌익세력 살펴보고 신고하자’ 길가에 간첩 신고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바닷가 지역에서도 ‘간첩선 신고’ 안내를 종종 볼 수 있었지만, 군위는 지명에 ‘군(軍)’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어서 괜히, 안보를 중시하는 지역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1970년대나 1980년대쯤, 반공주의가 강하던 시기에 설치하고 쓴 것들일텐데 아직까지 없애지 않고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배낭 속의 건빵과 젤리 따위 군입거리들을 아침으로 먹으며 다시 걷고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했다.
“아제처럼 이렇게 여행 다닐 수 있는 게 참 좋네요. 나는 빚을 내가꼬라도 자식한테 여행 많이 보내 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한참 어린 나를 ‘아제’라고 부르는 배태환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탔다. 찾아보니 아제(阿弟)는 ‘동생’을 친밀하게 부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아저씨가 말한 ‘아제’가 ‘동생’의 의미였는지 그냥 ‘아저씨’의 경상북도 사투리였는지는, 경북 사람을 더 많이 만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영천에 사는 아저씨는 건설 일을 하고 있고 안동의 공사 현장으로 출근을 하는 길이었다.
천안에서 의성까지 여행하는 동안 여덟아홉 번쯤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손을 들어 도움을 청하는 몸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하늘과 땅 가운데 홀로 걷는 게 지쳐 보여서” 차를 세웠다는 보성에 사는 정미소 사장 아주머니는 그리스 가수 ‘나나 무스꾸리’의 <Alone(혼자)>이란 노래를 틀어 주기도 했다. 다양한 운전자들이 있었지만 건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는데, 그게 완전한 우연은 아니었다는 것을 배태환 아저씨가 설명해주셨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못 믿게 만드는, 사건 사고가 잦은 세상이고, “사람들은 다 외모를 보고 판단을 하니까” 보통은 지저분하고 가방도 큰 나그네를 잘 태워주지 않는다. 그런데 건설 현장을 다니는 차들은 대체로 “먼지가 많아서” 깨끗함을 덜 신경 쓰게 된다. “일을 하다가 보면 아무 거나 다 싣고 다니고, 아무나 타도 상관없지요. 그리고 내가 경험해 보니까 건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겁이 좀 없어요.” 그래서 차에 태울까 말까, 남들보다 고민을 덜하고 낯선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듯 아저씨의 설명 하나하나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동안 나를 태워준 먼지 많은 차들과, 겁 없고 조금 거칠기도 하지만 정이 많은 건설 노동자분들에게 다시금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어느덧 우리는 군위군을 지나 의성군에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