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도 길든다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 에서

by 늘야옹

며칠 전 집 가는 길에 길냥이 한 마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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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 조심조심 손을 뻗었다. 쓰다듬으니 가만히 머릴 내맡겼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근처 편의점에 뛰어 들어갔다. 닭가슴살 캔 하나를 집었다. 일사천리로 먹이주기까지 성공하길 꿈꾸며. 설렜다. 돌아와 보니 녀석은 이미 뭔가 뭘 먹고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녀석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야 녀석이 날 보고 안 도망간 이유를 알았다. 사람의 호의에 익숙해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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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은 것들의 뇌는 낯섦보단 익숙함을 선호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욘스에 따르면, 친숙한 환경에선 잡아먹힐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 뇌가 너무 공평하다는 데 있다. 유쾌한 감정이든 불쾌한 감정이든 뇌는 익숙한 걸 느낄 때 안심한다. 연예인이 유독 공황장애에 잘 걸리는 까닭도 다름 아니다. 대중의 열광이 주는 자극 상태에 익숙해진 뇌는 그 부재를 견디지 못한다. 긴장도를 유지하려 불안과 우울을 오간다. 마약 같은 외부수단에 의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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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을 바라보는 우려스런 시선도 익숙함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다. 게임 속 세계에 빈번히 노출될수록,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역치도 줄어든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WHO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공식 분류했다. 이를 두고 반대여론도 적지 않다. 국내 게임산업 위축, 진단의 모호성, 타 중독현상과의 비대칭적 규제 등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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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위축을 근거로 질병을 방기할 수는 없다. 진단 기준이 모호하면 정비해나갈 일이다. 진단 자체를 부정할 일이 아니다. 카페인이나 쇼핑중독은 두고 게임중독만 잡는다는 주장은 푸념에 가깝다. 후폭풍을 따져봤을 때 범주가 다르다. 게임중독은 선언적인 추상명사가 아니다. 뇌세포를 무력화하는 위험질환이다. 현질에 증발하는 통장잔고이다. 파괴되는 일상생활이며, 같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단절되는 가족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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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끊임없이 익숙해질 대상을 찾는다. 현실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한 청소년들이 비현실로 도피하는 건 비극이다. 우리사회가 맞닥뜨린 적은 게임중독자들이 아니다. 게임 이외의 것이 깃들 수 없는, 공부의 여집합은 모조리 ‘나태’로 규정되는, 이제는 익숙해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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