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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Jul 03. 2019

길냥이도 길든다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 에서

며칠 전 집 가는 길에 길냥이 한 마리를 만났다.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 조심조심 손을 뻗었다. 쓰다듬으니 가만히 머릴 내맡겼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근처 편의점에 뛰어 들어갔다. 닭가슴살 캔 하나를 집었다. 일사천리로 먹이주기까지 성공하길 꿈꾸며. 설렜다. 돌아와 보니 녀석은 이미 뭔가 뭘 먹고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녀석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야 녀석이 날 보고 안 도망간 이유를 알았다. 사람의 호의에 익숙해진 거다.

살은 것들의 뇌는 낯섦보단 익숙함을 선호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욘스에 따르면, 친숙한 환경에선 잡아먹힐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우리 뇌가 너무 공평하다는 데 있다. 유쾌한 감정이든 불쾌한 감정이든 뇌는 익숙한 걸 느낄 때 안심한다. 연예인이 유독 공황장애에 잘 걸리는 까닭도 다름 아니다. 대중의 열광이 주는 자극 상태에 익숙해진 뇌는 그 부재를 견디지 못한다. 긴장도를 유지하려 불안과 우울을 오간다. 마약 같은 외부수단에 의존하기도 한다. 

게임중독을 바라보는 우려스런 시선도 익숙함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다. 게임 속 세계에 빈번히 노출될수록,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역치도 줄어든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WHO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공식 분류했다. 이를 두고 반대여론도 적지 않다. 국내 게임산업 위축, 진단의 모호성, 타 중독현상과의 비대칭적 규제 등이 이유다.

산업위축을 근거로 질병을 방기할 수는 없다. 진단 기준이 모호하면 정비해나갈 일이다. 진단 자체를 부정할 일이 아니다. 카페인이나 쇼핑중독은 두고 게임중독만 잡는다는 주장은 푸념에 가깝다. 후폭풍을 따져봤을 때 범주가 다르다. 게임중독은 선언적인 추상명사가 아니다. 뇌세포를 무력화하는 위험질환이다. 현질에 증발하는 통장잔고이다. 파괴되는 일상생활이며, 같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단절되는 가족관계이다.

뇌는 끊임없이 익숙해질 대상을 찾는다. 현실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한 청소년들이 비현실로 도피하는 건 비극이다. 우리사회가 맞닥뜨린 적은 게임중독자들이 아니다. 게임 이외의 것이 깃들 수 없는, 공부의 여집합은 모조리 ‘나태’로 규정되는, 이제는 익숙해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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