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야옹 Jul 02. 2019

신데렐라의 사정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 에서

고양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오늘도 평화로운 경묘당

지난 5월 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들었다. 10회차 수업 중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두 번을 빼곤 모두 출석했다. 마지막 날엔 날인이 찍힌 수료증이 배부됐다. 그렇게 마지막 의식을 거행하자 늘 마치던 밤 열시가 다됐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뭉실이랑 하늘이 뽀뽀한대요

뒤풀이가 있었다. 나 같은 20대부터 백발 할아버지, 현직 영화감독이신 강사님까지. 언제 또 이런 이색적인 집단에 속해볼까 싶어 따라나섰다. 장소는 학원 맞은편 고깃집. 지하철역도 고 앞이었다. 열두시께 막차까진 한 두 시간 남아있었다.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 보조강사님과 옆자리에 앉게 됐다. 말이 잘 통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열한 시 삼십분쯤, 강사님이 가봐야겠다며 짐을 챙겼다. 그제야 나도 같이 일어나 메인강사님께 인사를 드렸다.

비켜 뭉실이 형은 내꺼야

그가 우릴 잡아 세웠다.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할 때 나와 보조강사님도 데려다주겠다 했다. 그럼 그럴까 싶었다. 보조강사님은 한사코 거부했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봐야 한다며 연신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인강사님도 만만찮게 집요했다. 물론 호의였다. 왕년에 주먹을 많이 썼을 듯한 용모 덕에 얼핏 윽박지르는 것 같아 보여도. 지금 가야 한다, 이따 같이 가자... 가방을 들지도 놓지도 않은,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모양새로 나는 설전을 지켜봤다.

뭉실이(왼쪽) 사생팬 가을이(오른쪽)

보조강사님이 이겼다. 삼겹살이 역류하도록 뛰어 겨우 같이 막차를 탔다. 뱃속 동물성 지방이 요동치는 동안 강사님에게 동류의식도 솟구쳤다. 다음날은 현충일, 공휴일인데 일찍 가봐야 한다는 뻔한 거짓말이 애잔했다. 술자리에서 집에 못 가게 하는 진상(이 나미 많은 상사일 경우 더더욱)만큼 불편한 게 또 없으니. 겨우 숨을 돌린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가끔 이렇게 싸우기도 하고

“저 사실 폐소공포증이에요.” 한 10분쯤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강사님은 뜻밖의 고백을 했다. “자동차 같은 막힌 데선 숨이 막혀요. 낯선 사람이랑 있으면 더 심하고.” 영화관이나 강의실에서도 항상 출입구 바로 앞자리에 앉는다는 그녀는. 대학생 땐 한 강의에서 출입구에서 먼 지정좌석을 배정받는 바람에 출석미달로 D학점을 받기도 했다고.

일촉즉발의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허형만 시인은 ‘겨울 들판을 거닐며’에서 이렇게 썼다. 뻔한 거짓말이라 지레짐작했던 나를 꾸짖었다. 보이지 않는 아픔을 가진 이들의 노고란 얼마나 서러운가. 폐소공포증 같은 정신적 생채기는 가시적 징후가 없다. 그런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지도 않다. 그 상황에서 강사님이 “저 사실...”하고 고백했으면 달라졌을까? ‘굳이 저런 핑계까지...?’하며 눈초리나 받진 않았을라나. 그게 뭐냐며 캐묻는 어르신들 덕에 되레 더 난감해지진 않았을라나.

이렇게 각자 영역을 존중해주면서

어떤 사람은 커다란 참사에만 공감하지만,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에도 공감한다.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에게 전이되는 타인의 고통의 범주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되는 거 같다. 올 겨울에는 겨울들판을 잘 살펴봐야겠다.

오래오래 서로의 묘생 동반자로 의지하고 지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엥겔의 실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