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야옹 Jul 02. 2019

엥겔의 실수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 에서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는 표현에는 과장이 없다.

또리는 옴뇸뇸 식사중

허언증 있는 조상들이 지어낸 표현이 아니다. 물론 나는 출산이나 육아 경험이 없다. 경묘당 애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구내염의 고통 때문에 식사를 거부하는 애들이 많다.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삼순이도 마지막 며칠간 음식을 하나도 못 넘겼다. 그러다보니 고양이들이 잘 먹기만 해줘도 그리 대견하고 감동적이다. ‘묘생’의 질은 식생활에 따라 상당부분 좌우된다. 길고양이의 수명이 집 고양이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이유도 영양부족 때문이다.

몬돌이도 옴뇸뇸

사람은 좀 복잡하다. 먹는 문제가 해결돼도 삶의 질이나 행복도는 천차만별이다. ‘엥겔지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총 지출 중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엥겔지수다. 전통경제학에서는 엥겔지수와 삶의 질을 반비례관계로 봐왔다. 저소득층일수록 문화, 여가 등 식생활 이외 용도의 지출이 줄기 때문이다. 엥겔지수의 기저에는 식욕을 가장 기본적 욕망으로 보는 관점이 전제돼있다. 생활수준이 아무리 낮아져도 음식은 포기할 수 없는 탓이다.

까짓거 약도 흡입!

최근 엥겔지수는 경로를 이탈했다 한다. 국내 한 일간지는 개도국이 아닌 한국, 일본 등 국가에서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도했다. 그 까닭으로 배달, 외식문화의 활성화, 식재료 가격 상승, 웰빙 열풍 등을 꼽았다. 진실이 뭐든, 엥겔의 추론은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삶의 '전체 맥락'을 따지지 않고 한 부분만 수치화해 결과로 연결 지은 점이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요

‘먹방 열풍’또한 맥락에 눈 감으면 올곧이 이해할 수 없다. 먹방 유튜버 밴쯔의 구독자수가 3백만을 넘는다. 그 와중에 ‘남 (처)먹는 걸 왜 보고 앉았는지 모르겠다.’는 댓글도 적지 않다. 이 논리대로면 남 성관계하는 영상(포르노), 남 놀라는 영상(리액션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영원히 타인을 이해할 수가 없다.

미묘를 위해선 수분충전도 필수

혹자는 인터넷이 소통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한다. 끼리끼리의 소통은 분명 발달했다. 끼리끼리의 응집력이 강해질수록 배타적 집단간 소통은 단절된 게 문제다. 일베, 워마드 같은 극단적 집단이 점점 늘어난다. 극단적일수록 각광받는 곳이 ‘유튜브’다.

미묘의 완성은 과일

다른 이를 전체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이해받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흉악범죄 기사란마다 ‘사형하라’는 댓글이 눈에 띈다. 사형이 답일까. 가장 간단해 보이는 선택지는 대개 오답이다. 맥락은 복잡하다. 따지는 데 시간과 정성이 든다. 비용을 절약하려 행정규정만 들이밀면 사회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역사에서 맥락보다 효율을 좋아한 건 대개 독재자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흐가 왜 거기서 나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