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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Jun 21. 2019

고흐가 왜 거기서 나와?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 에서

경묘당은 묘하다.

보통의 유기동물 센터와는 다르다. 지자체나 시민단체 관할이 아닌데다, 신고 들어온 모든 고양이를 구조하지도 않는다. 지나친 합사는 영역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탓이다. 경묘당은 입양을 적극 홍보하는 ‘임시보호소’도 아니다. 홍보가 없어도 관심 있는 이들이 꾸준히 방문해 애들과 시간을 보낸다. 또 커피를 마신다. 수다도 떤다. 공예 같은 소일거리를 가져와 뚝딱거리기도 한다. 고양이카페라 하기에 경묘당은 인터레어도, 메뉴도 어설프다. 마케팅보단 ‘고양이의 호스피스 쉼터’라는 본 목적에 충실해 그렇다.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문에서 경묘당만큼이나 독특한 공간을 봤다. 1993년 ‘다시’ 문을 연  프랑스의 라부 여인숙이다. 고흐가 말년을 보내며 밀밭 시리즈를 탄생시킨 곳이다. 이곳을 반고흐 재단 대표 도미니크 얀센이 인수해 복원했다. 고흐의 꿈은 이제 얀센의 꿈이다. 고흐는 그의 그림이 미술관이 아닌 일상공간에 걸려 사람들과 호흡하길 바랐다 한다. 얀센은 고흐의 그림을 이곳으로 되돌려놓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문제는 돈이다. 고흐가 여인숙에서 그린 그림은 80여점. 이중 단 한 점을 매입하는 데도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라부 여인숙이란 공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같은 공간에서 후세대의 삶과 고흐의 삶이 중첩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고흐의 진품이 걸리는 순간 여인숙은 미술관이 된다. 그 한 점을 보기 위한 순례행렬이 이어질 거다. 서너 시간을 줄 서도 그림과 마주하는 시간은 3분 남짓일 거다. 성스러운 공간은 금기도 많다. 고흐의 꿈처럼 누군가 그림을 보며 다과를 곁들이고 수다를 떤다면? 커피를 붓기 전 쫓겨날 거다.

꼭 진품이어야 할까. 아니, 꼭 그림이 있어야 할까. 자연스레 삶에 스며들려는 노력이 외려 부자연스럽다. 고흐가 생전처럼 무명이면 모를까, 지금의 빈센트 반 고흐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에 너무 위대해졌다. 진품의 존재보다 가치 있는 건 다름 아니다. 위대한 화가의 예술세계가 구축된 공간에서의 정신적 체험이다.

사람들은 공간을 물리 단위로 쪼개 지도를 만든다. 그래도 어떤 장소는 같은 면적의 다른 당소와 다르다. 어느 부자나 권력가가 아주 호화로운 공간을 마련할 수는 있다. 그래도 어떤 이의 마음에 그 공간이 기억될 틈까지 마련할 수는 없다. 살며 꿈꾸며 고뇌하는 가운데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했던 기억. 그것이 한 공간을 다른 공간과 다르게 만든다. 라부 여인숙이 뭇 여인숙과 다른 만큼이나, 뭇 미술관과도 달랐으면 한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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