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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Jul 15. 2019

노년의 스펙트럼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에서

지난 4월, 경묘당에 고양이 아홉 마리가 한꺼번에 늘었다. 네 살인 ‘니키’빼곤 모두 열 살 언저리 노묘들이었다. 사연이 복잡했다. 키우던 보호자가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관할 지자체인 영등포구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고양이들은 권한을 위임받은 동물자유연대를 거쳐 경묘당으로 왔다. 지금은 대부분 입양이나 임시보호처를 찾아간 상태다. 무슨 사정으로 수감됐는지 모르지만 보호자는 고양이들을 진심으로 아끼던 사람이었다 한다. 그래선지 애들이 멀끔하고 팔팔했다. 경묘당의 길냥이 출신 또래들이랑 같은 나이인 게 안 믿겼다.

경묘당 최고령, 애교쟁이 뭉실이(10세/남).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어찌나 똑똑하게 잘 다니는지

고생을 하면 빨리 늙는다. 사람도 그렇다. 젊을 땐 고만고만해도 나이 들어가는 속도가 차이를 만든다. 농사짓느라 볕에 많이 그을린 우리 할머니는 동갑인 배우 김영옥씨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인다. 귀갓길에 매일 마주치는 폐지 줍는 할머니는 연세가 얼마나 되셨을라나. 육안으로 유추해내려면 그 한숨과 그늘을 몇 꺼풀은 걷어내야 할 것이다.

뭉실이와 까미(8세/남). 내 무릎 방문횟수 압도적 1,2위들

노년의 고생은 돈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36개국 중 1위다. 65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 수치가 2016년 기준 45.7%로 가장 높았다. 정년퇴직한 노인들은 소득이 끊기거나 소규모 자영업,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물론 모든 노인이 가난하진 않다. 고소득 직장과 재테크로 말 그대로 이미(旣) 제법 얻어놓은(得) 기득권층도 많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소득별 차등적용이 아닌 일괄적 노인무임승차 제도를 시행하는 건 의문이다. 빈곤층에 집중돼야 할 복지가 애먼 데로 분산되는 것 아닌가.

떡실신, 숙면 뭉실

‘노인’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2-30대는 청년, 4-50대는 중년, 60대부턴 70대도 90세도 모두 노인. 뭉뚱그려진 그들은 재력도 능력도 개성도 희미해진다. 그냥 노인이다. 노인은 약자이며 노인은 생산성이 떨어진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으로써 보호해줘야 한다. 이런 연공서열 체계에선 기업이 정년연장을 꺼리는 게 당연하다. 연장한다 하더라도 청년채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맨날 이렇게 아기처럼 자는 뭉실이. 옆에는 가을이(1세/남).ㅋㅋ 나이차를 극복한 우정... 아빠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레이 크러시’가 요즘 화두다. TV 예능에선 ‘할담비’ 지병수씨가, 유튜브에선 박막례씨가 인기다. 이들은 기존의 무기력하거나 꼬장꼬장한 노인 이미지를 탈피했다. 그래도 여전히 노인이다. 손담비 춤도, 스카이캐슬 성대모사도 ‘노인’이 시도한다는 점이 웃음 포인트다. 유튜브 세대는 냉정하다. 빨리 변한다. 섣불리 제2, 제3의 박막례를 꿈꿔선 곤란하다. 고유한 정체성보다 단지 노인만을 내세운 콘텐츠는 곧 도태된다. 진정한 그레이 크러시는 멀었다. 그러려면 노인이란 획일적 정의부터 세분화돼야 한다. 60세 이상 국민이 노인으로 일괄 명명되지 않는 세상, 많이 멋질 것 같다.

잠깐 문 열어둔 사이 냥글냥글해진 주방... 서열 1위인 뭉실이는 언제나 대장 자리에! 친구들 잘 챙겨주는 듬직한 대장 뭉실아 우리 오래오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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