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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Jul 17. 2019

성공은 성공의 어머니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에서

약 시간마다 경묘당은 전쟁터다.

변비약 먹는 뭉실이와 구경하는 친구들. 왼쪽은 지금은 입양간 또리, 오른쪽은 몬돌이

캡슐을 분해해 닭 가슴살이나 참치에 살살 섞어놔도 안 먹는 애들은 죽어라 안 먹는다. 귀신같이 알고 튄다. 실패에 익숙해진 봉사자들 앞에 지난 달 혜성 같은 신입이 나타났다. 10년 넘게 고양이를 길러온 프로 집사님이었다. 그녀의 숙달된 움직임은 분식집 아주머니들이 김밥을 마는 프로세스만큼이나 보는 이를 넋 놓게 만들었다. 일단 두 장딴지로 후퇴경로를 폐쇄, 왼손으로 안전벨트 장착, 이빨이 없는 잇몸 끝부분에 엄지와 검지를 넣어 입을 벌린 뒤 잽싸게 오른손을 풀어 목구멍 깊숙이 알약 투입. 머뭇거리는 봉사자들에게 그녀는 말했다. “한번 성공하면 다음부턴 쉬워요.”

  약에 크게 저항감 없는 삼색이. 봉사자 분들 말로는 살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살려면 먹어야 하는 걸 아는 것 같다고 . 시한부 판정을 이겨내고 날마다 기적을 쓰고 있어요

그렇다. 성공도 습관이다. 감을 익혀야 한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독립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베르나르 아스크노프는 언론인들에게 결과를 얻어내는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다고 했다. 폭로하고 저항하는 단계부터 쾌감을 느끼긴 이르다는 것이다. 뭔가를 바꾸려면 그것으론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눈이 아팠던 루이도 약 먹고 점점 좋아지는 중. 여전히 사람 손을 안 타서 봉사자들이 다가가면 호다닥 도망가지만~ 괜찮아! 잘 먹고 건강하기만 해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결과보단 과정’ 등은 우리 사회가 참 좋아하는 아포리즘이다. 얼마 전 U-20 축구 대표팀과의 만찬에서 대통령은 ‘준우승이라는 성적도 대단했지만 과정이 더 좋았다’고 격려했다. ‘과정이 더 좋았다’는 여러 일간지의 기사 타이틀이 됐다. 결과보다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인전의 단골 서사이기도 하다. 올해 서거 500주기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습작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방박사의 예배>, <성 안나와 성 모자>를 포함해 그의 상당수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점은 오히려 신화를 완성시키는 요인이 됐다. 미완성작이 많은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은 도전 자체를 중시한 열정, 완벽주의 성향을 그 이유로 분석했다.

입맛 까다로운 우리 까미... 그래도 닭 가슴살은 차암 좋아해요

다빈치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래서 실패도 기념된다. 성공을 목표했던 실패는 있어도 실패를 목표했던 성공은 없다. 과정에만 의미부여를 하면 실패가 습관이 된다. 도전하고 깨지는 자아상에 도취될수록 성공은 멀어진다. 수많은 신생언론사들이 바위 같은 악(惡)에 맞서는 계란을 자처한다. 그들이 신성시해야 할 것은 도전이 아니다. 실질적 변화다.

약 먹이기 최고 난이도 지지! 저항이 심해서 봉사자 분들 다치시기도. 맨날 숨어있어서 얼굴 보기도 힘든 녀석... ㅠㅠ (뒤에 가을이도 나왔네)

끝나지 않을 싸움 자체를 정의롭게 여겨선 아무것도 안 바뀐다. 이솝우화 중 포도밭 삼형제 이야기가 있다. 게으른 삼형제에게 아버지는 어느 날 포도밭에 보물을 묻어뒀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 말을 믿고 삼형제는 열심히 밭을 파헤친다. 그 덕에 괭이질이 고르게 된 밭에서 탐스러운 포도라는 진짜 보물이 열린다. 그들이 괭이질 그 자체가 아닌 보물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약도 잘 먹고 뭐든 잘 먹는 몬돌이. 봉사자 분들이... '뚱뚱하면 어때 행복하면 되지'라고 ㅋㅋ 그럼 그럼 행복하면 돼지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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