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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Oct 07. 2019

고양이를 사랑하면 생기는 일들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에서

제법 쌀쌀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다.

가을이? 나? 푸항항항항

 며칠전까지만 해도 일교차가 심했는데. 이제 낮에 긴팔 입어도 안 덥다. 시간 빠르다 참. 봄에 경묘당 봉사를 시작했었다. 사실 중간에 몇번 그만하려고도 했다. 원래 봉사를 하던 시간에 알바를 하게 됐다. 그래도 계속 하는 쪽을 택. 봉사 시간을 옮겼다. 그 뒤로도 위기는 찾아왔다. 뭐니뭐니해도 집에서 왕복 5시간 걸리는 거리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뿐이지만 하루 반나절이 지나가버리니. 그래도 계속 하고 있다. 그만할 뻔한 이유는 여럿이었으나 그러지 않은 이유는 하나. 귀여운 애들이 눈에 아른거려서..!!

스스로 봐도 귀엽지!!! 자꾸자꾸 보고싶지!!!
그런데 맨날 내 물을 마시는 모카... 너네꺼 있는데 왜구래!! ㅋㅋ 누가 보면 물 안주는 줄 알겠어...
시치미 뚝. 경묘당 냥아치 모카

이쯤되면 내 사리사욕(?) 채우려 봉사하나 싶다. ‘봉사’라 하기도 부끄럽다.

여전히 사람을 보면 도망가는 부끄럼쟁이지만 루이도 이렇게 귀엽답니다

고양이들을 위해 뭘 하고 나면 내 마음이 더 좋아진다. 집에서도 잘 안하는 청소, 빨래, 가족 끼니 챙기기, 털 다듬어주기(?), 사랑한다고 말하기...

애미야 그릇이 비었다
곁을 내어주기

난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본 적 없다. 대부분 심히 빨리 끝나버렸다. 길어야 두세 달. 횟수로 치자면 꽤 해봤다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실질적 ‘모쏠’ 이다. ‘사랑’ 단어에 걸맞을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안 떠오른다. 집에서도 무뚝뚝한 딸, 누나다. 육성(?)으로 사랑한단 말을 잘 못 한다. 그런 내가. 비록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고양이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사랑한다 말한다. 더 잘해주려 고뇌한다. (한낱 내 마음도 이정도인데, 엄마의 마음이란... 모성애 부성애란 얼마나 위대한 것일까)

아기고양이들에게는 감히 나도 엄마의 마음(?) 비스무리한 게 느껴진다
고양이계에서는 제일 높은 캣타워에 올라가있는 애가 서열 1위라던데...?!
생후 만 1년도 안 된 아기고양이 '불이'.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휘젓고 다닌다

고양이 보호단체 기사엔 종종 이런 댓글이 달린다. 개, 고양이만 챙기지 말고 소, 닭, 벌레도 좀 챙겨봐라! 한때는 말도 안 되는 논리라 생각했다. 아니 내가 다른 동물을 괴롭히기를 하나! 그리고 누구든 좀더 좋아하고, 가깝게 느끼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잖나. 옆 집 아주머니에게도 우리 엄마와 꼭 같은 만큼 효도할 순 없듯이.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거다. 바야흐로 올해 여름... 벽에 붙은 모기를 잡으려는 순간. 번뜻,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게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은 어떤 생명을 아무 죄책감없이 내려친다는 게... 어떤 동물은 귀엽다는 이유로 돌봐주면서. 고양이를 더 알아가고 좋아하게 될수록 사랑이 번져나가는 걸까. 다른 존재들에게로.

앞으로도 난 모기나 쌀벌레, 비둘기들을 고양이만큼 살뜰히 아껴주진 못할 거다. 그래도 ‘최소한’은 하고 싶어졌다. 내 생명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어떤 살아있는 것도 고의로 해치지 않기. 신념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심플한 규칙이다. 이 규칙 하에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살아온지도 꽤 됐다. 볶음밥 햄 정도는 가끔 먹어서 따지고 보면 페스코도 못 되지만. 언젠가 나도 비건채식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계란은 너무 맛있는 걸... 겨울에 라떼없이 어떻게 살아... 아무튼 고양이들이 내 삶에 불러일으킨 변화란... 쓰고보니 엄청나다. 이러다 고양이들 진짜 지구 지배하는 거 아냐! 귀여움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때를 대비해 더 충성해야겠다.

손 모은 것좀 보세요 ㅠㅠ
아가들 사이에서도 꿀리지않는 동안 노령묘. 오늘따라 유난히 귀여웠던 수영이(콧수염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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