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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Oct 11. 2019

악취와 무취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에서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문태준 <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中



은행의 계절이 왔다. 나는 단풍보다 은행이 더 좋다. 노랗게 쌓인 은행잎 옆은 그냥 못 지나친다. 괜히 운동화를 갖다대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가을볕에 반짝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은행은 예로부터 유교에서 숭상한 나무라 한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행단(杏壇)’이, 은행나무를 심어놓은 야외 강단이라는 설도 있다. 은행은 단풍이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그늘도 넓다. 그래서 현대에도 가로수로 사랑받는다.


나는 은행을 보면 아빠가 떠오른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기관지가 안 좋았다. 집안 내력일 거다. 할아버지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집 냉장고엔 항상 껍질이 벗겨 삶아진 은행 열매가 있었다. 엄마는 은행알이 기관지에 좋다 했다. 연둣빛에 탱글탱글하니 참 예쁘기도 했다. 그 귀여운 열매가 길거리의 냄새나는 그 은행인 줄은 더 크고나서 알았다. 물론 그후로도 은행에 대한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악취가 좀 난대도 뭐. 내겐 아빠의 목을 지켜준 기특한 생명이다.


나의 고마운 은행이 이 즈음이면 여기저기서 골칫거리다. 악취 때문이다. 얼마전 한 뉴스에서 그 정도를 측정했다. 측정기의 악취 수치가 400까지 올라갔다. 500쯤 되는 하수구 주변 공기를 조금 밑도는 수치다. 이러니 민원이 쏟아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지자체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은행이 떨어지지 않게 그물망을 친다. 기계로 털어 수거하기도 한다. 은행나무를 아예 없애기도 한다. 2013년부터 전국 5000그루 이상의 은행나무가 뽑혔다 한다. 이 작업에 60억 가량이 들었다. 새로 심는 나무들은 대개 암나무대신 아예 열매를 안 맺는 수나무들이다.


나무 입장에선 서글플 것도 같다.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30년 이상이 걸린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열매를 맺고보니 칭찬은커녕 욕이나 먹는 거다. 은행나무는 공해나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도 있는데 말이다. 시원한 그늘, 아름다운 단풍, 그 모든 것을 내어주면 뭐하나. ‘냄새’ 한 놈이 잘못하니 일 년중 두 달은 영락없는 불청객 신세다.


허물이 단 하나도 없는 존재가 어디 있을까. 나무든 사람이든. 얼마 전의 면접자리가 생각난다. 면접관이 세 명의 지원자에게 물었다.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의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말해볼게요.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걸로. 단점에 대해 한번 반박해보세요.” 내 옆의 김 모씨는 성실은 해보이는데 무색무취라는 평을 들었다. 반대로 나는 개성은 있는데 호불호가 너무 확실해보인단다. 뭐라고 ‘반박’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반박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건가. 어찌됐든 나는, 내 것이 있는 사람이고 싶으니. 좌우지간 뭔 냄새든 뭔 색이든 간에. 그래, 은행나무처럼 말이다.

경묘당 아이들은 봉사자 분들이 손수 만든 턱받이를 하고 있다
구내염 때문에 침을 많이 흘려서다
 혼자서 그루밍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묘구수도 많아 매일 하나하나 목욕을 시켜줄 수도 없다
그래서 경묘당에 들어서는 순간 고양이 냄새(?)가 확~ㅋㅋㅋ 나갈 땐 탈취제 필수.
그래도  이 꼬질이들이 너무너무사랑스럽다
그리고... 점점 적응된다. (코가 막히는 건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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