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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Oct 12. 2019

금이나 흙이나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에서

고양이들 중에도 금수저가 있고 흙수저가 있다. ‘슈퍼캣페스타’라는 박람회에 갔다가 적잖이 놀랐다. 이름도 희한한 희귀약초를 갈아 넣었다는 유기농 사료부터, 건축의 발전을 과시하는 고차원적인 캣타워, 심지어 반려묘 전용 보험상품까지 성황리 판매되고 있었다. 거기서 양손 무겁게 돌아가는 집사네 고양이라면 적어도 은수저쯤은 되지 않을까. 버려지거나 길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경묘당으로 온 아이들은 아무래도 흙수저 쪽이다.

그래도 이곳에선 늘 세상이 따뜻한 곳이란 걸 느낀다. 이렇게 예쁜 꽃모양 러그를 후원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다들 잠든 나른한 오후... 혼자 대장놀이 중인 하늘군

현대판 신분제, 5년 전쯤 시작된 흙수저 담론은 여전히 핫하다. 조선시대처럼 봉기라도 일으킬 명분마저 착취당했다. 티끌만큼이나마 인생 역전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잘해도 내 탓, 못해도 내 탓. 해답은 늘 이렇게 귀결된다. “조금 더 노력하자.”

흙수저(?)라 해도 알찬 후원 덕에 밥이 모자라진 않은 경묘당 ㅎㅎ 

요즘 조국 법무부 장관이 뜨거운 감자다. 그는 ‘입시’라는 대한민국의 역린을 건드려버렸다. 그의 딸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우수학술지에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이 실렸다. 흙수저, 아니 은수저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불법은 아니었다. 그는 부와 지위를 ‘활용’해 합법적으로 딸의 앞길을 터줬다. 굳이‘불법’까지 자행해가며 품위를 잃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합법이라 더 서글펐다고.

입시 그게 뭐냐옹... 배부르고 따뜻하면 좋은 묘생이지.

한때 나는 내가 흙수저라 생각했었다. 부모님 두 분 다 평범한 직장인이다. 나름 특목고와 명문대를 다니며 오히려 주변 친구들에게 박탈감을 느꼈다. 수학 4등급을 맞아도 토플 하나로 입학한 친구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기에 영어가 원어민급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능 점수로 대학에 갔다. 내 노력 하나만으로 이룬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정시야말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드는 절대선이라 믿었다.

사람은 안 따라도 고양이 친구들은 참 좋아하는 가을이마저 감당하지못한 신입 반점이의 에너지....

몇 년 전 과외학생을 가르쳤을 때다. 수업시간 맞추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 애는 나보다도 더 바빴다. 알바를 병행하는 재수생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시기, 딱 1년만큼은 종일 공부에만 매진해도 모자라다. 부모님에게 이야기해보라는 멍청한 얘기를 꺼내버렸다. 1년 정도 그 애가 돈을 안 번다고 집안생계가 어려워질 거라곤 미처 생각이 가닿지 못했다. 나는 과외든 알바든 해서 돈을 벌면 다 내가 썼지 집에 보탠 적이 없었으니까.

까미, 그리고 조신한 자세의 몬돌이 (일명 빨간망토단)

내 노력‘만’은 아니었단 것이다. 1년 눈 딱 감고 다른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우리 집이 그 정도 형편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수시 폐지, 정시 확대’가 궁극적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어쩌면 부와 권력 말고는 추구할 가치가 빈약해진 세상이 근본적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금수저도 흙수저도 결국 같은 길을 간다. 전자는 비교적 쉽게 주어진 즐거움을 더욱 확장하고자 하고 후자는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며 절치부심한다. 달리 누릴 낙이 없어진 세상. 부와 권력만을 좇아 불나방들은 끊임없이 달려들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만나서인지 유난히 형제처럼 의지하고 지내는 아이들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몽글몽글...
도도녀 하니와 비만남(ㅋㅋ) 하늘이... 성공이 뭐 별건가 그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는데!
욕심도, 성공, 걱정도 잊게 만드는 오후의 햇볕과 고양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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