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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Oct 15. 2019

참을 ‘인’보단 참을 ‘왜’.

길고양이 호스피스쉼터 '경묘당'에서

해질녘 고양이는 노을을 바라본다.

고양이는 분위기 빼면 시체다옹
수영이 뉴나~ 폼 잡지말고 나랑 놀자

나는 그런 고양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아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기분일까. 나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해졌을까. 고양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나는 철학자가 된다. 감각과 지각이 평소보다 한 뼘 더 깊어진다. 뇌는 외려 편안해진다. 내 감정, 내 이상, 내 의지를 살피느라 긴장했던 근육들이 이완하는 느낌이랄까. 평생 고뇌한다 한들 한낱 닝겐이! 고양님들의 속내를 완전히 파악할 순 없겠지만. 더 가까워지려 하는 그 순간 자체가 즐겁다.

황혼육아 중인 뭉실이
햇볕이 만들어준 요가매트
오늘도 내 것을 탐내는 모카
카라를 세워줘야 패션의 완성
여자친구 혼자두고 친구 록키랑 꽁냥 중인 하늘이
예쁜 록키 ♡ 아프지만 하늘이가 챙겨주니 든든하다

고양이말고, 인간의 입장을 고려해보기는 좀 더 힘겹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무례한 손님을 친절로 응대하기엔 적잖은 인내가 필요하다. 아르바이트 하는 베이커리가 병원 근처에 있다. 내 또래보단 부모님, 조부모님뻘 손님이 많다.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때로 황당한 요구를 한다. 유상판매하는 봉투를 그냥 달라 떼를 쓰신다든지. 안 된다고 하면? 법과 사장님의 지시대로 일할 뿐인 내가 욕을 먹는다.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지만 정말로 알바를 하대하기라니!

면회중인 연인처럼 애틋하게 나왔지만... 하악질하는 중이다. 친구들 패고 다니다 잠시 격리된 신입 룩코ㅠ_ㅠ
잠금 풀기 시도! 얼마나 똑똑한지. 뭉실이 뭉화충격... "저렇게 여는 거였냐옹?!?!"

지금도 이순간까지도 의문의 대상인 손님도 있다. 반투명 봉투에 빵을 담아드렸더니 “빵이 안 보이게 해달라.”던 할머니. 그냥 좀 특이한 분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또 몇몇 어르신들이 검정봉투를 달라거나, 빵이 안 보이게 큰 종이봉투를 달라시는 거다! 빵을 사먹는 것이 부끄러우신 걸까? 그렇다면 왜...? 나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나이 먹으면 이유를 알게 되려나. 30년쯤 뒤 나도 어딘가에서 “깜장봉투 없으요?”하며 풋내기 알바를 당황하게 만들려나.

까미(9세): 에헴~ 애들은 가라옹
"왜요 할부디!!!" 생후 만 일년도 안 된 반점이 ^ㅅ^

‘역지사지.’ 도덕책에나 나오는 허울 좋은 소리는 아니다. 실생활에서 매우 유용한 격언이다. 갈등상황에서 ‘참을 인’ 새겨가며 무작정 참는 건 자기학대다. 기꺼이 그 사람 입장이 돼보길 시도하는 건 무작정 참는 것과 다르다. 그 사람이 아닌 내게 이롭다. ‘이상해, 저 사람 싫어.’하고 증오해버리면 순간은 간편하다. 그러나 일상의 사소한 증오가 쌓일수록 나는 세상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증오는 남이 아닌 나를 갉아먹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가정하면 ‘왜’라고 묻게 된다. 집요하게 묻다보면 증오에 쓰일 에너지는 소진된다.

ㄴㅏ는 가끔... 못생김이 묻는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나로 인해 더 행복해졌을까. 혹시... 배 부르고 등 따신 것보다 거리에서 떠돌던 자유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진 않을까. 이 친구들에게도 혹 꿈이나 야망 같은 게 있을까. 답 안 나오는 질문들에 고민할수록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고양이도, 사람도... 소설 <앵무새 길들이기>에서 아빠가 스카웃에게 말했었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멋지다고. 정말이다. 자세히 보는 자만이 그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고양이는 왜 귀여울까
오늘도 반겨줘서 고마워 냥이들~ 반점아 너도 반가운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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