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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Mar 15. 2023

사주팔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갔다. 영험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그냥 인테리어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평범한 찻집 혹은 카페같았다. 차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두근거렸다. 무당같은 차림새 여자 선생님인 거란 예상과 달리 남자 선생님이 나오셨다. 중고등학교 때 한문 선생님같은 평범한 아저씨였다.

     

사주를 처음 본다고 하니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하셨다. 이게 사주고, 이게 팔자고... 사실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본론으로 넘어갔으면 했다. 다행이 그렇게 하셨다. 

    

나는 금이 많은 사주라 하셨다. 금은 불이 없으면 장롱 속의 보석만큼이나 쓸모없는 것인데 내 사주에는 불도 있다고 했다. 금이 많은 사주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서 가족과도 부딪칠 수 있으니 웬만하면 나가 사는 게 좋다고 하셨다. 저도 나가고 싶어요 선생님. 혹시 선생님이 내 표정을 읽고 때려맞출까봐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엇!맞아요 하고 싶을 때마다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담았다.     


또 나는 게으르면서도 활동적이라 사무직은 답답해서 못 견딘다고 하셨다. 표현력과 순발력이 좋고 뭘 자꾸 바깥으로 표출하려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남자를 꼬시는 재주가 없는 사주인데 막상 또 나 좋다는 착한 남자들에게는 끌리지 않을 거라 하셨다. 사람이든 일이든 곧죽어도 내가 하고싶은 걸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 하셨다.     


선생님이 미래에 대한 예언보다 내가 갖고 태어난 천성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좋았다. 미래는 내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나란 사람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 현재를 좀더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3만 6천원이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1년 이내에 고민이 있으면 또 오라며 한 번 as는 공짜라고 하셨다. 꼭 또 가야지. 선생님은 다음엔 남자친구랑 같이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필시 무슨 고민이 있어서 왔을 거라며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고 하셨다. 나의 최대고민인 직장과 이직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4월에서 6월사이 이동수가 있으니 부지런히 두드려보라고 하셨다. 내 상상과는 달리 너무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아서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왠지모르게 발걸음이 좀더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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