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나는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학년이 바뀌어도 모든 담임선생님들이 일기쓰기 숙제를 내고 매주 검사하셨다. 혹시 일기 검사가 선생님들의 필수업무중 하나인 걸까? 어쨌든 원해서 쓴 일기는 아니었다.
하얀 공책을 펼칠 때마다 아득해졌다. 집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글감을 찾아내기란... 그래서 생각한 묘책은 ‘포맷을 새롭게 하기’였다. ‘시 일기’, ‘독서 일기’, ‘편지 일기’... 각양각색의 글을 일기의 탈을 씌워 토해냈다. 도저히 쓸만한 내용이 없다 싶은 평범한 날이면, 오늘 본 하늘 색깔에 대해 시를 쓰고,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읽은 책의 줄거리와 감상을 쓰는 식이었다. 특히 시 일기를 많이 썼다. 시만큼 자유로운 글이 없었다. 꼭 한 페이지를 다 채우지 않아도 됐고, 좌우로 여백도 많이 남겼다. 당시 담임선생님도 대충 눈치를 채고 계시지 않았을까.
‘얘가 오늘은 어지간히도 일기를 쓰기 귀찮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