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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Oct 20. 2019

과학과 종교

내겐 대략 70살 차이나는 벗이 있다.

제주도에서 만난 96살 할아버지 장로님이다.

이번 여행 때도 그를 찾아갔다.

요즘 오락가락하시는 통에 또 같은 질문을 들었다.

"넌 종교가 뭐야?"

"무굔데요."

"에잇~~~! 무교는 바보야!"

"예???"

'무교는 바보'라는 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발끈해서 대꾸했다.

"왜요? 무교가 얼마나 많은데요. 아, 저는 '과학'을 믿어요."

"과학? 과학? 음..."

젊었을 적 대학병원 의사셨으니 '과학'은 인정하실수밖에 없으리라. 하하.

그런데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과학은 당연히 해야하는 거고. 그런데 어떻게 할 거냐 그 과학을. '길'이 있어야 할 거 아냐. 그 길이 종교야.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기준이 없으면 과학도 소용 없어."

치매기가 호되지셨다더니 무슨, 그 총기에 놀랐다.

그리고 그가 불교와 이슬람을 이야기해서 놀랐다.

보통 독실한 교인들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던데.

나는 평소 그게 좀 독선적으로 느껴졌다.

종교를 가진다면 기독교보단 불교가 낫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는 거다.

뭐든 좋으니 믿으라고.

네 삶의 뿌리가 있어야 한다고.

아니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제주여행 마지막날인 오늘, 공항에서 바로 동네 교회로 직행해버렸다.

다음 만남 땐 할아버지에게 "저 이제 바보 아니에요" 할 수 있게 될까.

절도 한번 가보고 결정해야지. 

내 멋진 96살 친구의 조언을 느리게, 힘껏 곱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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