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야옹 Oct 21. 2019

똥개는 왜 나를 슬프게 할까

김훈 <개>

언젠가 선착장에 나와서 주인님의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머리에 갈매기 똥을 맞은 적이 있었다. 물찌똥이었는데, 똥은 내 눈을 뒤덮고 코 위에까지 흘러내렸다. 나는 약이 올라서 입을 크게 벌리고 뒷다리로 땅을 박차면서 솟구쳐 올랐지만, 내 머리 위에서 똥을 갈겨놓고 날아가는 갈매기를 잡아서 혼내줄 수는 없었다. 그놈이 다음에 또 선착장에 내려앉으면 혼을 내주려고 벌렀는데, 갈매기가 너무 많고 생긴 꼴도 똑같아서 어느 놈이 그놈인지 찾아낼 수도 없었다.


나는 어린 영수가 싼 똥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똥을 먹은 일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똥을 먹는다고 해서 똥개가 아니다.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다. 하지만 내가 똥을 자꾸 먹으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제는 똥을 먹지 않는다. 먹고 싶을 때도 참는다.


내가 똥을 먹었다고, 똥 먹은 주둥이가 벌을 받았는데, 회초리는 내 콧잔등도 때렸어. 내 몸에 때릴 곳이 많은데 왜 하필 내가 애지중지하는 코를 때리는지. 나는 주인 아주머니가 야속했어.


사람들은 구두가 낡으면 헌 구두를 내버리고 새 구두를 사 신지만 개들은 발바닥 굳은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붙일 수가 없다. 굳은살은 한 벌뿐이다. 등산화도 축구화도 조깅화도 장화도 군화도 없다. (...) 그렇기는 하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저 가볍고 미끄러운 몸놀림은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나는 내 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나는 혀를 빼서 발바닥 굳은살을 핥았다.


편지나 자장면이나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짖지 않는다. 짖지는 않지만, 그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눈여겨본다.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지나갈 때, 어린애를 업거나 손목을 잡은 여자, 머리 위에 짐을 인 여자, 손수레를 끄는 남자가 지나갈 때는 짖지도 않고 노려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지나가는 것들이 지나갈 때 나는 짖지 않는다.


나는 비를 맞으며 흐느적흐느적 걸었다. 다 젖어서 더 젖을 것도 없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다리 겨드랑 밑과 턱밑에서 수컷의 비린내가 물씬 풍겨 나왔다. 힘 좋고 가득찬 자의 냄새가 아니라 가난하고 모자라는 자의 냄새였다. 흰순이를 찾아가는 길은 그 가난하고 모자라는 자의 길이었다.


겨울밤에, 어두운 하늘에서 와글거리는 별들을 쳐다보며 개집 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 내 콧잔등에 와닿는 공기는 차고 가벼웠다. 나는 서늘한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온 세상이 빛과 힘으로 가득 차는 봄을 기다렸다. 나는 겨울이 힘들어서 봄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봄이 신기해서 봄을 기다렸다. 여름에, 나는 선명해지고 공기 중에 습기가 빠져서 별들이 가까워지는 겨울을 기다렸다.  



아름다운 문장이 많아 옮겨보았다. 읽는 내내 울컥울컥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날 울린 숱한 소설의 주인공이 동물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이, <연어>의 은빛연어, <돌아온 진돗개 백구>의 백구... 동물들의 눈은 왠지 사람의 그것보다 슬퍼보인다. 특히 시골 똥개의 눈. 구슬프다, 우울하다, 애통하다, 애처롭다, 서럽다,도 아닌, 슬프다. 이유는 글쎄다. 너무 인간중심적인 생각인가. 그들 나름대로 무척이나 흥겨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사람에게 충성같은 거 하지말고 똥개들이 좀더 이기적이고 영악해졌으면 좋겠다. 역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소망이겠지만.


내가 만났던 아주 멋진 똥개들. 지금은 어디서 뭐하는지 살아는 있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색깔 조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