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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야옹 Oct 04. 2020

'동정심'이 불편했다

KBS1 채널에는 조용히 오래 가는 프로그램이 많다. <동행>도 그렇다. 시간대마저 토요일 오후 6시, 인기 예능들이 방영한다는 황금 시간대다. 이 각축 속에서 살아남은 프로그램의 비결이 궁금했다.


지난 9월 12일에 방영한 273화의 부제는 ‘산골 소년과 고추밭.’ 주인공인 13살 성규는 62살 아버지를 도와 고추 농사를 지으며 공부도 똑 부러지게 해내는 참 야무진 아이다. 흔한 초딩 같지가 않다. 동네 어르신들도 성규는 특별한 아이라며 예뻐라하신다. 아버지 농사만 돕는 게 아니다. 틈틈이 동네 주민들 소일거리를 돕고 풋나물 같은 먹거리를 얻어가 아빠와의 밥상에 올린다. 보는동안 왠지 모르게 철없던, 철없던 나 자신을 자꾸 반성하게 된다.


프로그램 좌상단에 내내 ‘후원계좌번호’가 걸려있는 것이 조금 걸렸는데, 시청자로 하여금 저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후원을 유도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란 말인가? 하긴 그 소정의 보상을 제시하기에 성규네 같은 일반인 출연자도 비교적 쉽게 섭외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규네 뿐 아니라, <동행>의 출연자들은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로 프로그램 속에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저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좌상단의 후원계좌가 계속 걸렸던 것 같다.  


후원이라는 프로그램 사후적 장치가 꼭 이 프로르램에 필요할까, 그게 목적이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문제다. (방송국 측에서 제시하는 출연료로는 섭외가 녹록지 않으려나...?) 돈만 많고 생각이 썩어빠진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살고 있는 훌륭한 이웃들이 슬픈 BGM과 함께 동정의 대상으로 포장되는 게 아무래도 불편하다. 더군다나 저들의 삶에서 돈이 큰 문제가 된다면, 그건 기부로 해결될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다(성규 가족의 경우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


좋은 취지인 건 이해한다. 다소간 경제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후원금 좀 전달하는 게 뭐가 나쁜가. 그나마도 공영방송이라 주말 황금시간대에 이런 돈 안 되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불편한 기분의 원인은 1) 기부가 소외계층 문제 해결에 궁극적 해결법이 아니라는 사실 2) 단지 ‘돈’이라는 기준 하나로 누군가에게는 우월감을 느끼게 하고, 누군가는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사고방식을 시청자에게 은연중에 주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한 구석은 어쩐지 찝찝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프로그램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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