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부지런한 게으름
실행
신고
라이킷
8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늘야옹
Oct 05. 2021
개 한 마리와 깨달음
방구석 시청자를 거쳐, 열혈 방청객을 거쳐, 계약직 조연출을 거쳐, 정규직 방송쟁이가 되어 한 계절을 보냈다.
‘PD’라는 간절했던 신기루를 손에 쥔 황홀함에 도취됐던 나날은 많이 잡아야 고작 일주일 정도였다.
입사 전과 입사 후, PD가 아니었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나고, 인생은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지구는 돈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가 되고 싶었다.
왜 하필 다큐멘터리였는고 하니, 사람들 마음을 몽글몽글 울컥울컥하게 하는 따뜻한 볼거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게 꼭 다큐멘터리만 있는 건 아닌데?
어쩌다 결론이 ‘다큐멘터리 PD’로 귀결됐는지는 기억이 명확치 않다.
‘따뜻=휴먼다큐멘터리’라는 어디서 주워섬긴 이미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아마도 오래전 어느날에,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내가 몸담게 된 이곳은 경제전문
팀
. 휴먼다큐멘터리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래서 ‘반반
’인채로 수습기간을 보낸 감이 없잖아 있다.
반쪽의 나는 여전히 ‘다큐멘터리’를 동경하며 현실에서 따분함을 느꼈다.
반쪽의 나는 ‘생각지 못했지만 우연히 걷게 된 이길이 내게 꼭 맞다’고 여기며 즐겁고 감사하게 회사생활을 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양념도 후라이드도 아닌 제3의 길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삶을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방송을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갑작스레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 “경제
프로그램
에서 어떻게?”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가장 절실히 배운 점 하나가 있다.
경제에 대한 지식은, 아주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고귀하고 유용한 정보라는 거다.
이런 고급정보를 TV에선 문턱없이 공평하게 제공한다.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더 유용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나의 개성과 연출력을 어떻게 잘 버무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늘 이 고민의 최종 지향점을 잃지 않는 PD가 되고 싶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송,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방송이라는 지향점이다.
놀랍게도 내가 갑작스런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건 퇴근길에 마주친 떠돌이 똥개 한 마리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유독 동물만 보면 마음이 찡해지곤 했다.
길가다가 마주친 길고양이, 떠돌이개 때문에 갑작스레 눈에 눈물이 차오른 적이 종종 있었다.
사람한테는 이정도로 측은지심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유독 동물한테 유별나다.
어쨌든 그 똥개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잠시후 나는 또다른 개 몇 마리를 만났다.
그 개들은 모두 목줄에 묶여 주인과 함께 산책 중이었다.
그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돌이 개는 불쌍하다 여기면서 목줄에 묶인 개는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편협한 편견인가?
내가 무슨 기준으로 누구를 함부로 동정하는 거지?
참 귀엽고 웃긴 오만이 아닐까?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들은 모두가 그 자체로 가치있고 고귀한 존재들이 아닌가?
한 가지 기준으로만 동정받고 도움받아야할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든 살아있는 것은 훌륭하다”에 이르렀고...
내 주변의 훌륭한 생명들을 위한 방송을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상하지만 진짜다)
얼마전 들은 설교 말씀이 떠오른다.
세상이 정한 길 같은 거에 얽매일 필요 없다고.
하나님이 유일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내 인생의 독특한 스토리를 기꺼이 써내려가면 된다고.
생각지도 못한 경로를 통해 요즘 묵히고 있던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나 스스로 찾아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동태눈 될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게 오늘의 다짐은 이곳에 박제해두어야겠다.
keyword
방송
경제
유기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