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찾아 마음을 탐험해요

사랑받았던 기억을 찾아 심해 같은 마음의 바닥을 향해 깊이깊이 내려갑니다

by 는개

쏟아지는 유성우인 양 의도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반복되며 떨어지는 우울삽화들의 압력들 사이에서 버티면서 사랑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습니다. 예쁨 받았던 작은 기억을 억지로 억지로 건지려 애쓰는 건 우울감을 견디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모든 기억이 우울하고 슬픈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쁨이 가득 찬 것도 아니니까요.


고독함도, 먹먹함도, 기쁨도, 즐거움도

외로움도, 차가움도, 공포도, 무서움도.

무감각도, 수치심도, 분노도, 불안조차.


모르는 감정들 사이사이로도 다니며 그 안에서 다른 걸 찾으려고 헤맸어요.

먼지처럼 흩어진 부유물들 하나하나를 느릿느릿하게 살피며 유영했어요.

무저갱처럼 깊은 우울감이 익숙한 고통으로 저를 부르며 심해로 심해로 끝없이 끌어들였지만,


그렇지만, 했어요.

사랑받았던 기억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쥐어짜듯 힘쓰고 애쓰자 부유물 하나가 반짝, 반사됐습니다.

열리는 현관문소리와 튀긴 닭의 기름냄새. 술에 취해 일정하지 않은 걸음을 한 아빠가 기분이 좋을 때면 종종 길거리에서 파는 통닭을 사 왔었어요. 누런 서류봉투에 담긴 통닭을 거실에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펼치곤 다리를 뜯어 큰 딸~, 작은 딸~ 하며 하나씩 내밀던 목소리.


이름 모를 심해어 한 마리를 발견한 기분이었어요.

다른 생물체들과는 다르게 심해어는 먹이를 많이 먹지 않아요.

심해는 산소도 희박하고 수압도 높고 생물체가 살기 척박한 환경입니다. 먹이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 심해어는 먹이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한 군데에 눌러앉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먹이가 오기를 기다려요. 지구 바다의 95%를 차지하는 심해를 탐사하는 입장에서는 생명체를 보기가 힘들죠. 발견된 종은 많지만 개체수는 하나같이 많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몇 번을 탐험해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심해어 같은 그런 기억.

심해어가 먹는 고래 사체인지, 어떤 영양분인지, 해초의 조각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런 먹이 같은 그런 기억이 있었어요. 그 기억을 길어 올려 조금씩 때를 벗기고 부분 부분을 비춰봤어요.


진공 상태인 듯 불분명하던 목소리가 조금씩 형태를 보입니다.

술 취해 기분 좋은 아빠의 목소리.

어린 시절 살았었던 어느 집,

환기가 안된 고여있는 공기,

당겨지는 무거운 현관문이 끼이익, 내는 가청주파수 음역대의 소리.

추운 밖에서 들어와 집안 온도차사이에 새빨개진 아빠의 손.

품에 안고 온 봉투 속 통닭의 기름냄새.


여전히 정지된 한 컷 같은 확실하지 않은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아빠가 다리를 찢어 건네던 손은 선명했습니다.


옆에서 낮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 보면 엄마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작은 딸~ 하고 내밀었던 아빠의 손도 보였어요. 여동생은 보이지 않고 언제의 기억인지,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 모두 명확하지 않아요. 그래서 혹시나 여태 봤던 모든 것들 중에 조각난 것들이 멋대로 붙어 조작된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의심해 봤지만 나를 향해 닭다리를 건네주던 아빠의 손은 분명히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빠가 무엇을 쥐는 모양은 영화든, 매체든, 누군가의 손 모양과 대체할 수 없을 만큼 특이한 아빠만의 제스처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었어요.


내가 행복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빠가 주는 통닭의 두꺼운 닭다리를 보며 아빠가 나 주려고 사 왔구나, 생각했던 건 기억이 나요.

벙글벙글 웃으며 먹는 걸 한참 쳐다보고 있던 아빠의 시선을 느꼈던 것도.

그 눈을 본 건지 보지 않은 건지 생각나진 않지만 보통 그런 장면에서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스러워 어쩌지 못하는 눈으로 보잖아요? 우리 아빠도 별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보편적 시전으로 보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봐요.


있네요,

사랑받았던 기억.


비록 형체도 분명치 않고,

한 컷, 한 장면, 한 씬이 온전하진 않아도.

언제, 어디서였는지조차 추적도 할 수 없어도.

가라앉아있는 기억들 속에 있었어요.


미래였던 과거로부터,

현재였던 과거에까지.

없는 게 아니었네요.


조각들을 모아봐야겠어요.

보정하고, 편집하고, 잘 붙이면

투명 테이프 자국이 있어도,

너무 빛이 바랬대도

알아볼 수는 있으니까.


지금도 내려오고 가라앉는 기억들은

분실되고 쪼개지고 버려지고 깨지고 잊히고 있는데


시간과, 장소와, 인물이 뒤섞여 왜곡되어

새로운 씬을 만들어 낸다고 할지라도

결국 영화로 치면 몽타주가 될 뿐일 테니까.


그중에 내가 사랑받는 쪽으로

잘못되게 기억한다고, 왜곡해서 기억한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상처 주는 것도 아니면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나, 생각하는데

우울이가 웃네요.

뭘 떠올려도, 뭘 떠올리지 않아도

버거워만 하던 우울이가.


사랑받았던 기억을 억지로라도 찾아내는 방법,

나쁘진 않은 건가 봐요.


헤집어볼게요.

탐험해 볼게요.

기억의 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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