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무슨. 오늘을 버티기도 벅차고, 내일은 꿈꾸지도 않는데
맥주를 마셨어요.
너무 가득 찬 마음의 무언가가 넘치기 전에 덜어내려고요
틈틈이 몰려오는 슬픔을 참다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대본집을 펴놓고 보며 끅끅대며 울었어요.
눈물로 떨궈보내니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나아졌다거나 후련해졌다기보단…
투명한 비커에 세럼이나 앰플 같은 점성 있는 물질로 만들어진 마음이 가득 차 있어요.
임계점을 넘기 직전, 무거운 몸을 기울여 조금 덜어 낸 기분이에요.
고작 이렇게 덜어내고 있는 나날의 반복입니다.
우울이와 함께 있으면서
몇 해를 나는
무관심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네요.
눈이 가는 것도,
마음이 가는 것도,
간 마음을 멈추게 하는 것도,
그치는 것도.
뭐 하나 쉬운 게 없네요.
오늘도 아무런 전조 없이 흘러나오는 우울과 슬픔을 누르고, 눈물이라도 흘리게 되면 티 나지 않게 얼른 닦아내고는 누가 물으면 눈에 뭐가 들어갔다고, 혹은 안구 건조증이라고, 잠을 잘 못 자서 눈이 뻑뻑해서 그런다고 하며 둘러대는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우울과 슬픔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그런 순간이면 어떻게든 해야 했습니다. 우울삽화에게 기습을 당해도 어떻게든 피하고 외면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렇게 해도 설움이 터져 멈춰지지 않을 땐
어딘가 숨을 공간을 찾아 혼자 쪼그리고 앉아요.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고 온몸에 힘을 주며 어떻게든 괜찮아지려고 해요.
그럼 정말 괜찮아집니다.
침대에 눕기 전 수면제를 삼켰어요.
술을 마시곤 수면제를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건 내일 이후의 일이고, 나는 오늘을 넘기기에도 너무 절박한걸요.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침대에 누우면, 선생님이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는 너무 위험한 생각들 사이로만 유영해 다니니까요.
오늘을 살려고 하루에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살아야 할 이유를 떠올려요.
머릿속에서 계속 왜 사냐고, 왜 살아야 하냐고 외치는 내가 있어요.
무턱대고 무작위로 들려오는 질문에 탁구공처럼 반사적으로 대답합니다.
딱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살아야 하지?
ㄴ 그렇다고 딱히 죽을 이유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
ㄴ 응. 죽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 살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ㄴ 뭐, 틀린 말은 아니네. 하지만
하지만?
ㄴ 어차피 둘 다 이유가 없으면 에너지를 덜 쓰는 쪽으로 해야지.
무슨 에너지?
ㄴ 죽는 데는 너무 많은 감정과, 너무 많은 행동력이 필요해.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거기에 쏟을 기력도 없다.
ㄴ 응, 그러니까 생각하지 마.
그나마 있는 기력도 떨어져.
머릿속에서 이런 대화들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잠들어요. 수면제 덕분에 한 시간 내로 끊기고, 눈을 뜨면 내일 아침이 와 있어요.
또 오늘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