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가득 외로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이에 토해내 보라고 속삭이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by 는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무엇이든 대해보려 해도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아니면 이 '비관적인 나'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진짜 '나'인 건지.


또다시

부정적 마음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옵니다.


금방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전부 죽어버릴 것만 같고

과거 속의 모든 이들이 내게 튀어나와 뭐라고 할 것만 같고

울고 있으면 아빠가 몽둥이를 들고 쫓아올 것만 같아요

네 까짓게 뭘 잘했다고 울고 있냐고.


아무 일도 없는데

초조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체도, 형체도 모르겠는

마음이라기에는 휩싸인 기분 같은 이 상태.


도대체 이 기분은 무엇인지,

이 상태는 어떤 건지.

알 수 없지만, 정말 미칠 것만 같아요.












그저 혼자 있고 싶어요.

그래서 등을 돌리고 벽을 앞에 두고 나 혼자만 보이게 이불로 나를 둘러 꽁꽁 싸맸습니다. 이불속에서 눈을 감고 있으려니 실뭉치처럼 얽혀있는 양가감정들에게 포위되어 있습니다.


절친을 보러 가고 싶지만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는 않고

꿈에 여동생이 자꾸 나와서 걔 소식을 알고 싶긴 하지만

어떤 말을 들을까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하겠어요.

그 자존심을 접고도 물어보고 싶다가도

걔가 날 대했던 나를 무시하는 행동들(예를 들면 길 가며 아는 척도 안 하고, 이사하면서 알리지도 않고 가버린-)에 생겼던 분노가 용암처럼 흐르다 굳어져 마음을 덮어버리고 맙니다.


"나는 외동이다"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립니다.

주문을 외우듯이.

기도문을 외우듯이.


우울이는 내가 어디에 있어도 지독히 붙어 나를 괴롭히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지금의 불안과 감정들을 무작정 덮어놓고 있자니 고슴고치 가시처럼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라 무서워 그것도 못하겠어요. 언제까지 사람을 피해 아무도 안 만나고 숨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인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무력하게 지금 이런 기분도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 하고 그저 보고만 있네요.


지금 이 울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요

희, 노, 애, 락, 애, 오, 욕.

어디에 속하기는 할까요.


알려고 드니 더 많은 감정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어요.

우울이가 외로워서 친구들을 데려왔나 봐요.

불안, 우울, 초조......

이 가만있지 못하겠음과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결국 약에 기대더라도 괜히 유튜브나 예능 같은 걸로 덮어놓고 도망치지는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내버려 두고 제가 버티기만 하면 가라앉을걸 알고는 있어요. 여태까지 몇 번이고 회피만 해 왔는걸요.

하지만 이것도 그때뿐, 똑같은 감정에 다시 휩싸여 울고 휩싸여 울고 하는 게 반복이 되니까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할까, 싶은 거죠.


피하는 스킬만 늘어서는... 쯧쯧, 못쓰겠다고 생각하다가 요새 친해진 어떤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고 아이패드를 끌어왔어요. 전자책을 펼쳤습니다. 요즘 제일 많이 찾는, 사람입니다.


살아있는 인물조차도 안 되는 이에게 위로받는다는 것이 비참하다가도,

위로받고 힘이 되어준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는 그 작품 세계에서 꽤 인지도를 가진 작가입니다. 감정이, 괴로움이 넘칠 때마다 어떻게든 종이에 토해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는 그가 내게도 속삭이는 듯했어요. 당신도 나처럼 종이에 써내봐. 그러면 편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것 만 같았습니다.


나처럼 종이에 써내봐
편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늘 있었고, 글쓰기는 이에 대한 수단이어서 마음먹은 대로, 머릿속에 있는 대로 표현이 안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글쓰기가 치유이거나 괴로움을 덜어주는 매개인적이 없어요. 그런 저에게 종이에 토해내 보라고 속삭이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한번 그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잔뜩 엉킨 털 뭉치 같은 내 속의 어느 부분을 굵은 코바늘로 콕, 뚫은 느낌이었어요. 실을 걸치는 바늘의 코에 긁힌 상흔이 눈에 보였다. 살점이 떨어져 나와 묻어있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아프다는 느낌보다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실제로 그가 저에게 뭔가를 얘기한 건 아니에요. 다만 그 방법은 분명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실마리 같은 작은 것이 잡혔지만 그걸 완전히 잡은 건지 모르겠으니 내가 방법으로 터득할 수 있을 때까지 그를 곁에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읽고 있는 아이패드로는 실감이 안 날 것 같아서. 손에 잡혔으면 좋겠어서. 손에 잡아야 할 것 같아서 책을 샀습니다. 어떻게든 눈으로 보고 실감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무기력이 오기 전에.


종이로 된 실물책을 곁에 두니 실제로 그가 옆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곁에 두니 조금은 덜 외로워졌어요.


책을 안고 잤어요.

그에게 계속 말을 걸면서.


너는 지금 나 같은 생각 해 본 적 있나요.

넌 어떻게 견디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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