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랜만에 정신이 맑았다. 바로 옆에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혜영일 것이다. 보나마나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누워 한참 동안 울다 잠들었을 것이다. 이불을 뒤집어 혜영에게 덮어주었다. 그녀의 손이 차마 그의 손에는 닿지 못하고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미안해.”
머리맡의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혹시나 혜영이 춥진 않을까 싶어 창문을 닫았다.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도록 앓는 동안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여름을 몰아내고 겨울이 와있었다. 그때 창가에 놓인 꽃이 흔들렸다. 꽃 너머 달빛에 혜영 얼굴 위로 진 그림자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분명 꽃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이번에 지면 끝이겠지.”
혜영이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이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봤다. 윤기가 나던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져 있었다.
“내 유언은 네 청춘이야.”
다시 혜영의 곁에 몸을 뉘었다.
“영원히 청춘을 살아. 널 기다리지 않을게. 대신 항상 옆에 있을게.”
두 사람의 머리맡에서 꽃이 다시 흔들렸다. 그리고 꽃이 가장 세차게 흔들리던 그 때, 방 안에는 혜영만이 남게 되었다. 껍데기도 남기지 않고 날아가 버린 누군가가 남긴 유언만이 함께하고 있었다.
-청춘-
오랜 밤 동안 선잠만 자던 혜영이 유난히 깊은 잠에 빠졌던 그 밤, 그녀의 곁에 유일하게 남은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