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로우면 글을 쓴다

by 피츠로이 Fitzroy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밤에 오는 전화는 불길한 것 밖에 없다,라고 (굳게) 믿는 나는 오늘 밤 울리는 아버지의 전화는 벨소리부터가 외로웠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외로웠던 게다.
술을 마셨고, 집에는 사람 기척이 없고, 갑자기 딸 생각이 났고, 술기운을 빌려 전화를 했겠지.
그리고 내가 받지 않자 동생에게도 걸었겠지.
뜬금없이 “최근에 청바지를 하나 샀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 맞으면 너 입어.”라고
하고 끊으면 동생도 알잖아. 아버지가 이상한 거. 평소 같지 않은 거.
그래서 동생은 결국 나한테 전화하잖아. 전혀 상관없는 딴 얘기로 시작하다가 결국 “실은 아빠한테 전화가 왔었어”라고.
나는 외로워지면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글 쓰기에 너무 진지해진 나머지 결국 왜 외로웠나 근본적인 이유를 잊게 된다.
아버지는 외로우면 뭘 하실까, 나보다 30년 이상 더 많이 사셨으니 나보다 30년 이상 외로움과 더 많이 만나셨을 테고, 외로움과의 대처법에 대해 더 많은 지혜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늦은 밤까지 잠 못 자고, 남의 외로움도 나의 외로움인 냥 착한 척, 슬픈 척 안 해도 될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술을 먹고 오면 꼭 자고 있는 내 방에 들렀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뽀뽀를 구걸했다. 자는 척하고 있으면 마른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던 게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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