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죠

by 피츠로이 Fitzroy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선택'이란 걸 해왔다. 그 선택이 항상 옳았는지 확신은 없다. 다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인생이 지금과는 또 많이 달라졌으라 생각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은 있다. A를 선택하면서 B를 버리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 똑같은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해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중학생 때 발레가 하고 싶었다. 학교 무용부에 들어가 춤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는데 운이 좋은 건지 무용 지도 선생님이 내 발을 보더니 넌 꼭 무용부에 들어와야 한다며 특혜를 주었다. 오디션도 없이.

그런데 나는 볼링부에 들어갔다. 친한 친구가 같이 볼링부에 들지 않으면 절교하겠다는 선언을 해서. 무용부는 발레 대회에서 연거푸 상을 타 왔고, 단발만 허용되는 학교에서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머리통 위에 우아하게 올리고 다니는 무용반 아이들을 보면서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그저 발끝만 내려봤다. 내 선택이었으니까.

볼링 칠 때마다 작은 볼링 슈즈 때문에 온 신경이 발에 가 있어 볼링공이 가운데로 가는지 옆 도랑으로 빠지는지 살펴볼 정신이 없었다. 무용 선생님께 칭찬받았던 큰 발이 거기선 너무 부끄러웠다. 볼링반에서 나는 가장 큰 발을 가지고 가장 적은 점수를 내는 아이 였다.

내가 만약 춤을 췄더라면 볼링공 던지는 것보다 잘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절교 선언했던 친구는 고등학교 때 연락이 끊겼다. 그냥 그때 절교할 걸.


고등학교 때는 연극이 하고 싶었다. 연극부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잘 나가는 아이들이 모인 동아리였다. 별 기대 없이 오디션에 참석했는데 심사석에서 단 한 번을 웃지 않는 무서운 선배들이 '합격'이라는 선물을 하사 했다. 오디션이 끝나고 어찌나 펑펑 울었던지. 긴장도 되는 데다 선배들이 정신 차릴 새 없이 몰아붙였다.

눈물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어야 하는데. 신입생 트레이닝은 지옥과 같았다. 점심 도시락은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 먹고,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서 매일 기합을 받았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학교 안에서 선배라도 마주치면 온 학교가 울릴 만큼 큰소리로 인사를 해야 하는지라 한 치도 방심할 수 없었다. 선배들의 군기 잡기는 나에게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학교가 파하고 또 이어지는 발성 연습 10분, 그리고 기합 100분.

난 괜히 공부 핑계를 댔다. 연극부 하면 공부할 시간이 적어지고, 그럼 난 대학을 못 갈 거야. 꽤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대학 진학을 그만둘 수 없으니 연극부를 그만둬야지. (나보다 높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한 연극부 동기들이 허다하다)

나의 결정으로 내 동기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선배들에게 죽을 만큼 혼이 났다. 동기 하나 지키지 못한다고. 눈물바다였다. 나는 미안해서 울고, 동기들은 기합이 힘들어서 울고.

학교 축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부 공연은 애써 외면했다. 동기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동기들은 늘 인기 있었고, 신입생들이 우러러보며, 엄청난 끼와 재능으로 뭉친 집단으로 굳어져 갔다.

탈락자는 나 혼자였다. 나는 3년 동안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다.

나는 낙오자다......

만약 연극을 계속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인기 있고, 활기차고, 돋보이는 아이로. 난 참으로 어중간한 아이였다. 공부도 어중간, 대인관계도 어중간, 인내심도 노력도 어중간.

지금도 가끔 연극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는 분명 그 순간을 즐겼을 것이다. 연기하는 내 모습을.


선택이란 게 참 재밌지 않은가, 선택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운명적으로 다가온 두 번의 기회를 나의 선택으로 놓쳐 버렸다. 뭐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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