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서른일곱이었다. 나는 하루에 11시간씩 일했다. 집에 오면 고양이에게 밥을 줘야 하고 화장실도 치워 줘야 했다. 가끔 인간들이 쓰는 화장실을 치울 시간도 필요했다(남편이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화장실만큼은 청소하지 않는다).
하루에 조금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입은 반의반으로 줄 테고, 고양이는 간식을 덜 먹게 되고, 남편과 나는 옷을 더욱 못 사게 되겠지만, 지금의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미래는 조금만 생각하고, 현재는 많이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얻은 게 많으냐 물으면 답하기 조금 곤란하다. 생각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결과는 다 좋은 게 된다.
살면서 그때처럼 강하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조금만 일하는 회사를 열심히 찾아보다가, 아빠를 위해 남편도 모르게 매달 내고 있는 고정 보험료를 떠올리고 나니 조금만 자고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혼을 하니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나는 우울한 인간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우울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한다. 인생의 삼 분의 일가량 우울했고, 수많은 우울한 글들을 써왔다.
중고등학교 때는 일기장에 썼고, 스무 살 때부터는 컴퓨터라는 물건을 활용해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인터넷 웹상에 쓴 남도 볼 수 있는 글들은 고치고 또 고치다가 어느 날은 지워버리기도 했다. 아무튼 읽는 사람까지 질려 버리게 만드는 우울한 글들이 많았다. 항상 불안한 듯 손톱을 뜯었고, 아무도 없을 때 폭식을 했다.
한 발만 더 내딛으면 그대로 앞이 까마득한 낭떠러지 같던 날들. 그것들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삼일 전, 연재식으로 조금씩 ‘브런치’ 매거진에 올렸던 글의 마지막 이야기를 마쳤다. 처음 귓불에 타투를 했을 때, 처음 배에 있던 큰 점을 뺐을 때, 인생이 크게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쓴 글이 이렇게 다 올라갔지만 역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미를 조금은 두고 싶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걸 드디어, 끝까지 잘 해냈다고. 아름이 잘했어! 하고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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