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_사랑받았다는 증거

by 피츠로이 Fitzroy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인 관계는 이상하게 사소한 것에서도 가슴이 아팠다. 난 어쩌다 보는 학교 가는 동생의 뒷모습에도 마음이 아프고, 아빠 손에 난 작은 상처에도, 엄마의 잘 나가던 처녀 시절 흑백사진에도 괜히 눈물이 났다.

나의 우울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뿌리가 깊었다. 가족도 죽음도 생각할수록 우울해졌고, 내 옆에 달라붙어 있는 고양이도 슬프고, 아빠 옆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은 외로움도 슬펐다. 가까이에 있어 슬픈 것들, 그러니까 고양이나 아빠한테서 아주 멀리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문득 내려다본 내 발에 껌처럼 붙어있는 슬픔이 애처로워, 지금은 나만 지켜야겠다고 나 먼저 생각해야겠다고 느꼈다. 인도에서 만난 니콜라가 그랬었다. 호주에 가서 살아보라고. 그래서 나는 한국과 계절조차 반대인 곳 호주에 와있다.

가을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던 날 떠났는데 멜버른에 도착하니 봄의 끝자락에 달라붙어 있었다. 놀랍게도 호주의 기후는 한국과 전혀 다른 느낌이라 한국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없다. 날씨의 냄새, 공기, 밀도 모두 다르다.

날이 매일매일 몹시 더워지고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희한한 일도 다 있지.

지난주부터 일할 곳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이력서를 돌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연락을 받은 곳은 없다. 돈은 많지 않지만 시간만큼은 남아돌 만큼 많아 나는 주로 엄마 생각을 하고 있다.

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잘 웃어주지 않고, 잘 안아주지 않고, 동생과 차별하고 사촌 언니와 비교하고, 아빠의 딸이라 부르고, 공부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굴고, 사는 게 너무 괴로워 보이는데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호주에서 하는 엄마 생각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다. 뜬금없이 아련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실은 엄마가 날 좋아했는데 표현에 서툴렀던 건 아닐까, 혹은 엄마의 삶이 너무 치열하고 팍팍했던 나머지 나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하나씩 적어 보기로 했다. 엄마가 그래도 나를 조금은 좋아했구나 생각되는 사소한 증거들을. 혹시라도 내가 잊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해 내고 있다.


【사건 1】

수능을 준비하며 나는 공부에 지쳤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엄청나게 으스대며 ‘비엔나커피’라는 게 있는데 네가 대학생이 되면 그걸 사주겠노라고, 같이 마시러 (특별히) 가주겠다 했다. 1년만 참으면 네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지금 내 말대로만 하라 했던 엄마. 커피를 시킬 때마다 종종 비엔나커피를 공약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 1년을 참고 대학생이 되었는데 엄마가 떠나는 바람에 결국 비엔나커피는 못 얻어먹었지만, 같이 마셔주겠다고 한 건 참 고맙다.


【사건 2】

내 큰 발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문제였다. 기성품에서는 맞는 구두를 찾기 힘들어지자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수제구두를 맞추러 가자 했다. 가격도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본까지 달기로 했기에 엄청나게 예쁜 게 나오는 거 아닌가 기대를 했는데 구두는 내 발 모양만큼이나 크고 투박하게 나왔다. 왜 이렇게 못생겼냐 투정했더니 네 발이 편하려면 이런 거 신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창피해서 신발장에 안에 숨겨놓고 안 신고 있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유니화로 검정 구두를 신으라기에 그 구두를 신고 일했다. 구두는 만신창이가 돼서 롯데리아 직원용 로커에서 구겨져 있었다. 그마저 나중엔 발 큰 여자 점장이 새로 오면서, 안 신을 거면 그 신발 나 주라 하길래 금방 내줬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는 3개월 만에 그만뒀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텃세에 시달리다가. 평생 처음으로 주문 제작이란 걸 해봤던 구두. 엄마는 그때 일손이 필요한 식당이면 어디든 갔었다. 고깃집 주방에서도 일하고, 중국집 홀 청소도 하고. 그래서 그 구두를 생각하면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 금방 아픔으로 바뀐다.


【사건 3】

중학교 2학년 때, 엄마가 갑자기 자기 전에 내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빈 맥주병을 하나 들고 들어와 누워보라 하더니 내 종아리를 밀었다. 매일 밤 빠짐없이 들어왔다. 엄마가 왜 내 종아리를 매일 밀어주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옛 사진첩을 뒤적이다 엄마 젊었을 적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반바지를 입고 있는 엄마의 다리는 내 다리 모양이랑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엄마는 미안했던 것이다, 똑같은 다리 모양을 물려줘서.

꽤 오랜 시간 내 다리를 만져줬었다. 결국 언젠가부터 그만둔 것이 맥주병 따위로 될 게 아니라고 포기한 것 같았지만, 다리를 밀던 엄마의 손은 따뜻했다.


【사건 4】

초등학교 3학년 때 비염을 심하게 앓았다. 코로 숨 쉬

는 방법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뭔가 몰두해 있을 때나 잠잘 때는 물론 평소에도 항상 입을 벌려 숨을 쉬었다.

입을 헤 벌리고 늦잠을 자고 있으면, 나를 깨우러 온 엄마가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 내 위아래 입술을 잡아 붙여 주곤 했다.

"이 녀석 또 이러고 자고 있네. 이래서 시집이나 갈까.”

잠결에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입술의 감촉이 좋았다. 깼는데도 계속 자는 척했다. 엄마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하나 더 듣고 싶어서.

비염을 앓으면 머리가 나빠지고 머리가 나빠지면 공부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사의 무책임한 말 때문에 나는 1년간 소금물을 코로 들이마셔서 입으로 뱉어내는 지옥 훈련을 해야 했다. 세숫대야 가득 담겨있는 소금물의 공포는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1년간 내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끝까지 옆에서 지켜봐 준 건 엄마였다.


【사건 5】

다섯 살이었을 때 엄청나게 (혹은 유별나게) 극성맞은 아이로 유명세를 떨쳤다. 극성맞은 아이는 펄펄 끓고 있는 냄비 안에 유리병 같은 것도 던진다.

엄마는 사과잼을 만드는 중이었고 큰 솥 안에는 사과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나는 유리병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 솥 안에 던져 넣었고, 엄마도 놀라고 나도 놀랐는데, 장난의 대가가 너무 처참해서 더 놀랐다. 걸쭉하게 끓고 있던 사과 과육이 그대로 얼굴로 튀어, 족히 열 군데는 넘을 크고 작은 화상을 입었다.

불에 덴 듯 울었다 했다. 뭐 불은 아니지만 사과잼도 불만큼 뜨거웠을 것 같다. 아무튼 엄청 울었단다. 엄마도 울었을지 모르겠다. 다섯 살짜리 여자애가 이제부터 평생 얼굴에 화상 흉터를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돌고 눈물도 날 것 같다.

그 시절에 찍힌 사진을 보면 내 얼굴엔 항상 연고가 발려있다. 번들거리는 얼굴로 뭐가 좋은지 바보처럼 웃고 있다.

엄마의 지극정성 간호 덕분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흉터 하나 남지 않고 깨끗한 얼굴로 돌아왔다. 심지어 엄마에게 물려받은 좋은 피부는 사과처럼 매끈했고, 사춘기 때 여드름 한 번 나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 기적을 만들어 냈다. 난데없는 장난만 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도 모자랄 원숭이 같은 놈을, 뭐가 이쁘다고 매일매일 정성껏 약을 발라 주었을까. 엄마가 조금은 나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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